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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윈 (Charles Darwin : 1809 - 1882)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다윈은 미국의 링컨(Abraham Lincoln)과 똑같은 날에 켄터키의 통나무집이 아닌 영국의 부유한 의사 집안에 태어났다고 한다.
에딘버러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그만두고, 뒤에는 케임브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나 신학보다는 곤충 채집이나 박물학에 더 흥미를 느끼던 그는 1831년 영국 해군성의 측량선인 비글호에 무보수 박물학자로 승선하여 5년 동안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를 답사하면서 미지의 자연을 접하고 정확한 눈으로 많은 사실을 관찰하였다.

 

 

다윈 진화론과 자연선택


그의 생애에서 훗날 그의 이론을 두고 가장 중요했던 기간은 그가 비글(Beagle)호의 선상 자연학자로서 남아메리카를 여행한 기간(1831∼36년)과 그 후의 한두 해였다. 항해중 다윈은 당시 새로 출판된 지질학자 라이엘(Charles Lyell : 1797-1875)의 <지질학 원리>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라이엘에 따르면 지구의 역사는 당시 지식층의 생각과는 달리 아주 긴 것이며 그 동안 여러 번의 지질시대가 바뀌어 갔고 그 시대마다 다른 생물이 생겨났다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먼저 비글호선상의 여행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했다. 첫째, 그 동안 화석으로만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었다. 둘째, 지역에 따라서 같은 종들이 서로 차이가 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셋째가 유명한 갈라파고스(Galapagos) 군도의 관찰로서, 겨우 수십 마일 정도 떨어진 여러 섬들로 이루어진 이 군도의 섬 각각에 각각 다른 종류의 동물상과 식물상이 분포되어 있음을 본 것이었다.

이 관찰들로부터 다윈은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우선, 첫째와 둘째 사실들은 종이 시간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름을 보여 주었고, 이것은 그로 하여금 종의 진화를 사실로서 받아들이게 했다. 그리고 지역에 따른 종의 차이는 진화가 주위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서 일어남을 말해 주었다. 각각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다른 형태의 진화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같은 지역의 기후, 풍토가 같은 섬들에 서로 다른 종들이 분포되어 있다는 세번째 사실은 종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라는 것이 기후, 풍토 등의 물리적 조건들만은 아님을 보여 주었다. 진화가 단순히 기후, 풍토에 의해 기계적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비글호의 여행에서 돌아온 다윈에게는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이제 문제는 진화를 일으키는 '적응'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다윈은 먼저 원예가, 동식물 사육가 등의 품종개량의 경험에 의존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르는 동식물 중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성질을 지닌 것들만을 선택해서 번식시킴으로써 그런 성질을 가진 것들을 많이 얻어내는 식으로 품종개량을 이루었다. 다시 말하면, '인위선택'(artificial selection)을 통해서 인간의 필요에 '적응'하는 품종쪽으로 종의 진화를 이루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 다윈은 자연에 대해서는 이러한 '선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다윈이 찾으려고 했던 것은 단순히 진화한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진화의 메커니즘이었다는 것이다. 즉 당시 영국의 과학철학계에서는 윌리엄 허셜(William Hershel, 1738∼1822)이나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1794∼1866) 등의 영향을 받아 과학적 설명에서 원인에 의한 설명을 강조했으며, 다윈도 이런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다윈은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단순히 '생존경쟁'이라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맬서스의 전제가 법칙적이고, 양적이며, 연역적이었다는 것에도 많은 호감을 가졌다.

비글호의 항해를 통해 그는 생물의 여러 가지 종은 원래 신이 창조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여건에 따라 변화하여 새로운 종이 생기고 또 없어지기도 한다는 진화설을 확고하게 믿게 되었다.

다윈 진화론과 자연선택

<갈라파고스 제도>

특히 갈라파고스섬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해 준 것 같다. 적도 근처의 이 섬들은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섬들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이 섬들에는 같은 종의 동물이 조금씩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여러 변종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다윈은 현재 '다윈 핀치'라고 불리는 새의 부리가 뭉툭한 것에서부터 아주 날카로운 <갈라파고스 제도> 것까지 4가지를 그림으로 그려놓고 뭉툭한 부리를 가진 핀치는 주로 큰 낟알을 주식으로 하고 제일 날카로운 부리의 핀치는 작은 벌레를 주식으로 먹고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네 가지 핀치류가 원래는 한 가지 핀치로부터 바뀌어 생겨난 것임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

맬더스의 "인구론"

<맬더스>

다윈은 1838년 맬더스의 "인구론(1798)"을 읽었다. 그리고 다윈 자신의 말에 의하면 '흥미삼아' 읽은 이 책의 내용이 다윈이 직면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자연계의 생존 경쟁을 착안하였으며, 그로부터 적자 생존이나 자연 선택의 원리를 결론으로 얻었다. 인간사회의 치열해져 가는 생존경쟁에서 이기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맬서스의 이야기는 다윈으 <맬더스> 로 하여금 '경쟁'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해 주었다. 즉, 생물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게 마련이고, 거기 적당한 자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종류는 도태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인구론의 표지>

곧, 이 같은 '경쟁'이 어떤 종의 여러 개체 중에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성질을 가진 것만이 살아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선택의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같은 성질을 가진 개체들만이 살아 남아서 종의 성질이 그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선택'할 것이다.
또한 다윈은 『인구론』에서 이야기하는 인간 <인구론의 표지> 이라는 하나의 종 안에서의 이 같은 '경쟁'을 같은 지역내의 여러 종들간의 경쟁으로 확장해서, 적응의 대상이 되는 환경에 한 종과 경쟁하고 있는 주위의 다른 종들도 포함되도록 했다. 기후, 풍토 등의 물리적 환경이 똑같은 갈라파고스군도의 서로 다른 섬들에서의 각각 다른 동식물 분포는 이 같은 종들간의 경쟁에 의해 설명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 진화의 메커니즘이라는 다윈의 이론의 핵심이 형성되었다.

종의 기원

<종의 기원 속표지>

1859년 다윈은 드디어 "종의 기원"《종(種)의 기원(起原):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 in the Struggle for Life》(정식 명칭은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을 출판하였는데, 초판은 그날 매진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성공의 원인은 그의 학설이 구체적인 실례와 직접적인 관찰에서 얻은 성과에 토대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화론은 다윈 혼자만의 업적은 아니었다. 당시 아일랜드의 생물학자인 월레스(Alfred R. <종의 기원 속표지> Wallace : 1823-1913)도 다윈과 거의 똑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진화론은 두 사람의 독자적인 동시 발견 업적인 것이다.

진화론은 그리스도교의 창조설과 대립하였기 때문에 비난을 받았으나, 당시의 자유주의 적인 사상가들로부터는 지지를 받았고, 사회적으로는 큰 논쟁이 일어났다. 다윈의 저서로 인하여 격렬한 대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진화론은 종교적, 사상적, 정치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전세계에 미쳤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진화론

진화론의 골자는 바로 그 저서의 표제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자연선택설을 요인론(要因論)으로 한 것이다. 자연선택설은 생물의 어떤 종(種)의 개체 간에 변이가 생겼을 경우에, 그 생물이 생활하고 있는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고, 부적합한 것은 멸망해 버린다는 견해이다. 곧, 개체 간에서 경쟁이 항상 일어나고 자연의 힘으로 선택이 반복되는 결과, 진화가 생긴다고 하는 설이다. 이 설에서는 개체간의 변이가 어떻게 생기느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라마르크가 제창한 환경의 영향에 따라 생긴 변이가 다음 대에 유전한다고 하는 획득형질유전론(獲得形質遺傳論)을 채용하고 있다. 또한, 개체 간에 경쟁이 일어난다고 하는 견해는 T.R.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시사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저 작

《종의 기원》은 초판 1,250부가 발매 당일에 매진될 정도로 큰 반응을 불러일으켜, 후에 6판까지 출판되었다. 60년 진화론에 관한 논쟁이 옥스퍼드에서 일어나 T.H.헉슬리와 J.D.후커 등의 지지로 다윈의 견해가 인정을 받았다.

62∼81년에 한 걸음 더 나아간 진화론에 관한 저작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사육동식물(飼育動植物)의 변이:The Variation in Animals and Plants under Domestication》(1868) 《인류의 유래와 성선택(性選擇):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71)이 유명하다. 특히 후자는 《종의 기원》에서 뚜렷이 제시하지 못했던 인간의 진화에 대하여 그의 태도를 분명히 한 저술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는 진화론 외에도 생물학상의 몇 가지 연구를 하였다. 80년의 《식물의 운동력》은 식물의 굴성(屈性)에 대한 선구적 연구인데, 식물학자인 아들 프랜시스 다윈(1848∼1925)과 공동으로 이룬 것이다.
또한, 《식물의 교배에 관한 연구》(76)와 《지렁이의 작용에 의한 토양의 문제》(81)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있다. 그는 82년 켄트 다운에서 죽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물리학에서의 뉴턴 역학과 더불어 사상의 혁신을 가져와 그 후의 자연관·세계관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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