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선 입단 나이가 어릴수록 성적이 좋다’
바둑계의 오랜 의문을 한 국내 여류 프로 기사가 최근 논문으로 밝혀내자 ‘꼬마 기사’들 사이에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런 탓일까. 여름 방학인데도 바둑에 빠져 지내는 초등학생들이 있다.
올해 11살의 나현 군(서울 강동초등 4년)은 방학인데도 하루 종일 바둑과 씨름한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나현이는 벌써 2년째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로 ‘바둑 유학’ 중이다. 나현이는 바둑 도장에서 숙식을 하며 ‘제2의 이창호’를 꿈꾸는 생활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언젠가 이창호 프로처럼 실눈을 뜨고 승부의 세계를 즐기고 싶거든요.” 나현이는 제법 의젓하게 자신의 꿈을 털어놓았다.
임다운 양(경기 야탑초등 6년)은 조금 나은 환경에서 바둑을 배우는 경우다. 하지만 다운이의 하루 일정도 결코 쉽지 않다. “친구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인 아침 7시 30분면 일어나야 해요. 서울에 있는 기원에 늦지 않게 도착하게 위해 부산하게 준비해야 하거든요.”

지난 3일 오전 10시,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한 바둑도장. 하루 일정이 막 시작되는 시각에 긴장감이 흐른다. 20~30명의 아이들 중 현이와 다운이도 보였다. 이 때부터 도장에서의 하루는 숨이 멎을 정도로 빡빡하다.
첫 수업 시간은 사범(김종수 프로5단, 이관철 프로3단, 김수장 프로9단)과의 대국이다. 정신을 집중해 2~3판쯤의 대국을 펼치다 보면 오전부터 몸은 녹초가 된다. 이어 이창호·조훈현 등 이름난 바둑 고수들의 기록 검토 시간. 그야말로 고수들의 세계를 엿보는 ‘기보 감상 시간’이다. 초반 포석, 중반 싸움, 집계산 끝내기까지 바둑의 모든 것에 대해 배운다. 이 때 쯤 되면 벌써 오후 7시. 하루가 언제 지나 갔는지 모른다. 찜통더위도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현이와 다운이는 “바둑공부를 하면서 경험하는 짜릿한 승부가 멋지다.”며, “이번 여름 방학이 너무 신난다.”고 했다.

이 곳 도장에는 또 다른 이창호를 꿈꾸는 친구들이 있어 현이와 다운이는 즐겁다. 바둑 친두는 박태희 양(경기 흥진초등 5년)과 박지영 양(서울 영풍초등 6년). 이들도 일찌감치 당찬 꿈을 키워왔다. 지금은 한솥밥을 먹고 있는 이들 4명은 모두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이다. 이 곳은 프로기사가 되기 위한 청소년들이 모인 곳으로, 문턱이 높기로 유명하다. 청소년(18세 이하)들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며, 현재 168명(남 120명, 여 48명)이 바둑을 배우고 있다. 이 곳은 3개월마다 치르는 선발전을 통과해야 자격이 유지될 정도로 엄격하다. 초등학생은 현재 10명 뿐이다.
이들 4명은 나이는 다르지만 실력이 비숫해 곧 친구가 됐다. 주중에는 도장에서 하루 종일 같이 지내고, 주말에는 한국 기원에서 다시 만나는 바둑 단짝들이다. 도장 최고 선배인 박지영 양은 “서로 격려하고, 경쟁도 하는 사이지만 일단 대국이 벌어지면 강한 승부욕을 보이는 ‘꼬마 프로들’ ”이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 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