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오늘] 2ㆍ8 독립선언(19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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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2.07 16:51

일본 동경조선유학생회가 중심이 돼 1919년 오늘 오후 2시 동경의 기독청년회관(YMCA)에 600여 명의 유학생이 모였다. 2000만 한민족을 대표해 독립선언문을 채택하는 자리였다. 이는 3ㆍ1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들은 춘원 이광수가 기초를 세운 독립선언문과 결의문을 낭독한 뒤 거리행진을 벌이려 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이 막아섰고 양측 사이에는 격투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최팔용 등 시위 학생 60여 명이 체포됐다.

이어 2월 12일과 23일에도 다시 100여 명의 학생들이 히비야 공원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선언은 한민족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사기와 폭력’에 의해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차지했음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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