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유관순 열사 표준 영정 그린 윤여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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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2.25 15:51 / 수정 : 2007.02.25 16:28

'영원한 누나' 눈빛에서 기개를 배우세요

이화학당 단체 사진 참고
'항일 민족 소녀’이미지
얼굴 표현 가장 힘들어


- 새 영정 제작의 가장 큰 원칙은 무엇이었나요?
“유 열사가 3·1운동 직전 이화학당강당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태극기를 굳게 쥐고 잠시 앉은 모습을 그렸어요. 19세 소녀의 청순하면서도 의기에 찬 모습을 담는 게 원칙이었죠.”

- 영정 제작은 왜 중요합니까?
“위인의 영정은 그 나라 역사이자 당시 시대상까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따라서 제작 시 옛 문헌이나 증언 등을 모아 이론적으로 증명(고증)하는 일은 필수적이지요.”

	유관순 열사 영정을 제작하고 있는 윤여환 교수. 그는“철저한 고증과정을 통해 88년 전 유 열사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올 수 있었다.”고말했다.
유관순 열사 영정을 제작하고 있는 윤여환 교수. 그는“철저한 고증과정을 통해 88년 전 유 열사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올 수 있었다.”고말했다.
- 고증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진 것으로 압니다.
“한 시민이 보내준 이화학당 단체사진 원본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건강했을 때의 얼굴 형태와 속쌍꺼풀까지 찾아냈어요. 당시엔 검정치마가 아닌 흰색 치마저고리를 입었다는 점과 고무신이 나오기 전으로 가죽신을 신었을 가능성도 찾아냈지요. 옷과 신발은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직접 제작됐고, 기록에 나온 유 열사의 실제 키(5척6촌·169.7cm)와 똑같은 제자를 모델로 정해 이를 착용케 하고 그림의 틀을 잡았습니다. 배경의 마루바닥은 현 이화여고 심슨기념관(1915년 건축) 교실마루를 정확히 측정해 당시 상황에 맞게 그렸습니다.”

- 표현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나요?
“역시 얼굴 부분이었어요. 국민들 마음 속에 잠재되어있는 청순 하면서도 항일의지가 서린‘민족소녀’의 이미지를 잡아내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 제작 당시 태극기 모양이 한차례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엔 지금처럼 태극기의 표준이 없어 태극모양과 사괘가 제각각 이었어요.
그래서 3·1운동때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내기 위해 만든‘태극기 목각판’(독립기념관 보관) 모양을 기준으로 그렸어요. 이후 태극기 모양에 대한 고증은 당시 상황상 의미가 없다는 관계 기관의 결정에 따라 현재와 똑같은 표준태극기로 바꾸었지요.”

- 국민적 관심이 쏠린 영정을 그리는 게 부담스러웠지요?
“고증과 심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21년 만에 바뀌는 영정이다보니 7차례나 문화관광부의 심의를 받았어요. 나중엔 사극 드라마의 인물도 예사로 보지 않게 되더군요.”

- 어린이들은 새 영정을 직접 볼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민족을 위해 몸 바친 유관순 열사의 기개를 느끼고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우승봉 기자 sbwo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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