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전, 경기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내 어린이 테마파크 ‘딸기가 좋아-집에 안 갈래’(탄현면 법흥리) 2층에 ‘특별한 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름 하여 ‘장난감 학교 쓸모’(이하 ‘쓸모’). 첫 번째 등교생은 하누리 군(경기 파주 통일초등 3년) 등 인근 지역 초등생 37명이었다. 하 군은 “오늘 날씨가 뺨이 빨개질 정도로 추웠지만 여기 올 생각에 절로 신이 났다”며 웃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선 이들 앞에 펼쳐진 건 10여 개 남짓한 상자마다 그득한 장난감들. 하지만 한껏 기대에 부풀어 상자 안을 뒤지던 어린이들은 금세 울상이 됐다. “에이, 이게 뭐야. 전부 부러진 것투성이잖아.”

◇골칫거리 ‘고물 장난감’의 변신

쓸모를 운영하는 곳은 사회적 기업 ‘금자동이’다. 쓸모는 이름처럼 장난감을 도구 삼아 갖가지 활동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멀쩡한 장난감은 단 한 개도 없다. 죄다 귀퉁이 떨어진 것 아니면 부러진 것뿐이다. 로봇 다리, 모형 자동차 바퀴처럼 일부분만 남은 장난감도 많다. 테이크아웃용 커피잔 뚜껑이나 버려진 인조 잔디 같은 재활용품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정자영 금자동이 총괄이사에 따르면 학교명인 쓸모는 ‘쓸모없어 보였던 장난감 조각들의 대변신’을 줄인 표현이다. “당연히 처음 온 어린이들은 실망하겠죠. 하지만 막상 수업에 참여해보면 버려진 장난감이 얼마나 ‘쓸모 있게’ 변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사실 버려진 장난감은 쓰레기 중에서도 최대 골칫거리다. 서울시에서만 연간 60t(톤)이 쏟아진다. 대부분 플라스틱 소재여서 썩지 않고 부피도 크다. 불에 태워 없애려 해도 그 과정에서 생긴 유해 물질이 공기를 오염시킨다. 이래저래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쓸모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SR센터’에서 처리 직전의 장난감 쓰레기를 매월 1t씩 공급받는다. SR센터는 버려진 가전제품이나 장난감 등을 전문적으로 수거하는 곳. 쓸모에 도착한 ‘고물 장난감’은 이곳에서 훌륭한 미술 재료로 거듭난다. 정자영 이사는 “주인에게 버림받아 폐기 처분되기 직전의 장난감도 이곳에선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며 “그 역할은 100%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없던 장난감’ 내 손으로

오전 10시 30분, 김주혜 금자동이 기획실장의 진행으로 수업이 시작됐다. “여러분이 본 것처럼 오늘 수업의 재료는 부러진 장난감이에요. 특별한 주제는 없어요. 오늘 하루 여러분은 장난감 디자이너가 되는 거예요.”

어린이들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제일 처음 한 일은 ‘재료 사냥’. 저마다 장난감이 채워진 상자 쪽으로 달려가 이런저런 장난감들을 한 움큼씩 쥐었다. 주제도 정했다. 박범수 군(경기 파주 통일초등 4년)은 큼직한 재료들을 갖고 책상 앞에 앉았다. “남자답게 아주 큰 동물, 코끼리를 만들 거예요.”

폐장난감의 변신을 돕는 ‘마법의 기구’는 글루건(glue gun·접착용 분무 기기). 김 실장은 작업 전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작업을 위해 장갑 착용을 당부했다. 60여 분간 장난감 디자이너가 된 어린이들이 진지한 자세로 장난감 제작에 나섰다. 세상에 둘도 없는 ‘나만의 장난감’이 탄생하려는 순간이었다.

◇버려진 나뭇가지도 ‘연필꽂이 재료’

이날 일부 어린이는 버려진 장난감 대신 나뭇조각을 선택해 연필꽂이를 만들었다. 나뭇조각 역시 ‘재활용품’이다. 서울 시내 가로수 가지치기 작업으로 수거된 나뭇가지를 가공한 것이기 때문. 이 나무들은 수업용 공구(못 제외)와 재료로도 쓰인다. 열심히 연필꽂이 제작에 몰두하던 김동건 군(경기 파주 석곶초등 5년)은 “오늘 수업으로 느낀 게 많다”고 했다. “세상엔 그냥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만드는 이 연필꽂이 재료만 해도 알고 보면 전부 쓰레기잖아요.”

수업이 끝날 무렵, 박준형 군(경기 파주 통일초등 3년)은 꼬리가 잘려나가 버려졌던 뱀 장난감으로 ‘정글’이란 이름의 새 장난감을 완성했다. 유지승 군(경기 파주 통일초등 3년)은 ‘더듬이’ 대신 ‘와이파이(Wi-Fi·근거리 무선통신)’ 모양장식을 매단 벌레를 만들었다. “와이파이를 활용하면 위험할 때 재빨리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웃음) 우여울 양(경기 파주 통일초등 3년)은 “처음엔 주제도 못 정해 당황스러웠지만 만들다 보니 어느덧 그럴듯한 형태가 갖춰지더라”며 “오늘 만든 작품을 오래오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장난감학교 '쓸모' 이렇게 가요

●기간: 2월 26일까지(단, 월요일·설날 연휴 휴무)

●장소: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 딸기가 좋아-집에 안 갈래 2층(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번지)

●시간: (오전반) 10시 30분~14시 30분 (오후반) 12시 30분~16시 30분

●연령: 4~12세(단, 4·5세는 학부모 1인 필수 동반)

●참가비: 3만5000원(1인 기준, 식사비 포함)

●프로그램: 장난감 만들기·뚝딱뚝딱 목공 체험·나무방 이야기·퍼즐박물관 관람

●예약·문의: www.kumjadonge.co.kr (031-945-8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