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 나누며 글자 원리 연구 재밌어 시간 가는 줄도 몰라요"
준사범 자격은 한자 급수자격 검정시험의 가장 높은 단계인 '사범'의 바로 아래 단계다. 5000자 선정 한자를 읽고 쓸 줄 알아야 시험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에 어른도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재민이의 합격 소식이 놀라운 건 한자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얻은 결과라는 사실이다. 서당에서 재민이를 가르친 스승 송경옥 씨는 "한자를 제대로 공부한 지 2년밖에 안 된 초등생이 최고 난도를 자랑하는 한자 자격시험에 합격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했다. 재민이는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고 말했다.
재민이가 한자를 처음 접한 건 유치원에 다닐 때다. 유치원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처음 7급 자격증을 땄다. 만점 합격이었다. 한자에 흥미가 생긴 재민이는 초등학교 1학년 말 무렵, 서당을 찾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서당에 가서 한자 공부를 했어요. 한번 가면 서너 시간 한자 공부에 푹 빠져 있었지요. 사자소학(四字小學), 추구(推句), 명심보감(明心寶鑑), 동몽선습(童蒙先習)… 옛 조상이 활용했던 교재로 한자를 배우고 글귀를 이해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특히 한자를 부수(部首·한자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나누면서 글자가 형성된 원리를 이해하는 게 재미있었답니다."
◇"우리 주변 모든 게 한자 공부 교재랍니다"
재민이가 한자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던 건 단순 암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자의 형성 원리와 유래 등을 이야기로 접하고 이해하는 데 비중을 뒀다. 해를 뜻하는 한자 '일(日)'은 해가 떠있는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상형문자)고, '상(上)'은 위를 가리키는 모습을 도형적 기호로 나타낸 글자(지사문자)라는 걸 알아가는 식이다. 또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한자 공부에 활용했다. 가장 대표적인 건 신문이었다.
"서당에 오면 선생님께서 신문 스크랩을 주셨어요. 신문 기사를 읽고 한자어를 찾아 한자로 바꿔보는 활동을 했어요. 잘 모르는 단어였지만 한자어를 구성하는 각각의 한자를 알고 나니, 국어사전을 찾지 않고도 뜻을 알게 됐죠. 아, 문제 하나 낼까요? 혹시 '대웅전'과 '대웅보전'의 차이를 아세요? 힌트는 한자 '보(寶·보배)'에 있답니다. 대웅전은 법당에 부처님을 한 분 모셨을 때, 대웅보전은 세 분의 부처님을 모셨을 때 사용한다고 해요. 보배라는 뜻의 한자 '보'를 더해서 부처님을 모신 전각의 격을 한 단계 높였다고나 할까요?"
역사·문화 유적지 답사를 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목적지를 방문하기 전 건물의 명칭, 유래, 역사 등 관련 정보를 한자로 꼼꼼히 풀어봤다. 덕분에 역사와 고전, 문화, 한자까지 익히는, 일석사조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재민이는 "미리 유적지에 대해 알고 갔더니, 절로 사회 공부가 되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한자를 익히면서 재민이는 국어, 사회 교과의 성적이 자연스럽게 향상됐다. 집중력이 좋아진 건 물론,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도 커졌다. 한학을 연구하는 한학자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도 꾸게 됐다. 재민이는 "한자를 알고 나니, 세상이 보이는 느낌"이라고 귀띔했다.
"준사범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잦았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선생님이 '넌 할 수 있다'고 힘을 북돋워 주셨고 결국 합격할 수 있었죠. 친구들에게도 한자를 꼭 공부해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신문이나 역사책을 활용하면 재미있게 접할 수 있답니다. 저도 앞으로 사범 자격증을 목표로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한자를 공부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