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품은 나무

오지연 동시집｜푸른책들｜1만500원

“이제 나는 아무 쓸모도 없어.”

곧 쓰러질 듯 기운이 없던
늙은 상수리나무
뻥 뚫린 가슴속에
소쩍새가 알을 다섯 개나 낳았다.

주저앉으려던 마음이
스을슬 구부정한 허리를
애써 곧추세운다.

알을 품은 나무가
뼈만 앙상한 팔로
제 가슴을 꽉 끌어안았다.
어느새 날개 돋는 꿈을 꾼다.

-‘알을 품은 나무’ 전문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 시인 오지연이 8년 만에 두 번째 동시집을 출간했다. 신간 ‘알을 품은 나무’에 실린 77편의 동시에는 밝고 환한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비쩍 말라 쓰러져가던 상수리나무가 ‘소쩍새의 알’을 품으며 다시 일어서듯, 슬픔과 좌절 속에 발견한 희망이기에 더욱 눈부시다.

난 남이 깨주는 게 싫어
내가 깨고 나갈 거야
더 큰 세상을 만나고 싶어

오늘도 쉬지 않고 껍질을
톡톡톡 콕콕콕
콕콕콕 톡톡톡

-‘계란 프라이가 되기 싫은 달걀’ 전문

‘계란 프라이가 되기 싫은 달걀’은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시다.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달걀’이라는 사물을 색다른 시선으로 그린다. 알 속의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스스로 껍질을 쪼아 알을 깨야 한다.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 남이 깨 준다는 건 결국 계란 프라이가 된다는 뜻이다.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오는 게 어렵고 힘들지만 병아리에겐 꼭 필요한 과정이다. 아프면서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처럼 말이다.

창문 밖에 노랗게 떠 있는 둥근달이
커다란 빵이었으면 좋겠어요
굶주린 아이들 세상 어디서든 따서
한입 크게 베어 물 수 있게요

-‘보름달 빵’ 중에서

세상 누구도 배고프지 않도록 밤하늘의 달과 별이 빵과 쌀이 되기를 바란다는 ‘보름달 빵’, 예쁘지 않아서 사람들이 사 가지 않은 상한 과일 몇 알이 새들의 소중한 양식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아침식사’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시다.

가족 생각에 마음껏 아프지도 못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담아낸 ‘서서 앓는 나무’, 아빠를 돕기 위해 마트 계산대에서 종일 힘겹게 일하는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발’은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가족의 모습을 뭉클하게 그린다. 외롭고 상처받은 마음, 메마르고 팍팍한 아이들의 일상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동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