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늘 아저씨 구멍가게 개돌이입니다. 왜 사람들이 아저씨더러 '하늘 아저씨'라 부르고, 아주머니더러 '하늘 아주머니'라 부를까요? 한참 그 이유를 몰랐는데요. 요즘 학교에 들어간 하늘 아저씨네 아들, 달이가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나도 글씨를 좀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저씨네 구멍가게 이름이 '하늘 가게'라서 그런 겁니다. 나는 늘 코딱지만 한 하늘 가게에 갇혀 지내는 일이 참 따분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어디를 가면 졸졸 따라다니는 재미를 솔솔 들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봄 날씨가 좋습니다. 어디 놀러 나가면 딱 좋을 날씨입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성당 봉사 활동으로 밥 퍼 주는 일을 도우러 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저씨가 가게를 보는 날입니다.

"아이고, 다리야."

청구 아파트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가게에 들어서며 하는 말입니다.

"할무이, 어디 다녀오십니껴?"

아저씨는 할머니가 들고 온 보퉁이를 얼른 받아 땅에 내려놓으며 묻습니다. 나는 한쪽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얼른 다가가 보자기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 봅니다. 갈비인가? 고등어인가? 아무튼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납니다.

"서울 아들한테 다녀오는 길이야. 손주 녀석 돌잔치 했다네."

할머니는 보따리를 풀어 약밥 뭉치 몇 개를 들어내어 건네며 말을 이으십니다.

"며늘아기가 쇠고기랑 반찬거리를 한 보따리 사 안겨서 이리 무겁구먼."

할머니가 힘든 얼굴을 해 보이자 아저씨가 얼른 그 말을 받아 말합니다.

"할무이, 두고 가시쇼. 제가 가게에 손님 없을 때 들어다 드리겠심더."

"아이고, 고맙수."

할머니는 아저씨 가게에서 밀가루 한 봉지를 사서 할머니 보따리 위에 올려두고 집으로 갑니다. 얼마 후 아저씨는 104동 504호에 할머니 보따리를 갖다 주러 갑니다. 나도 졸졸 따라갑니다.

"아이고, 고맙수. 약밥 좀 잡숫고 가슈."

"아까 주셨잖아예. 마 됐심더."

아저씨가 나가려다가 돌아섭니다. 나도 따라나오다 돌아섰습니다. 할머니가 가스레인지에 붙어 서서 불 켜는 손잡이를 계속 돌리고 있는 겁니다.

"불이 잘 안 켜집니껴?"

"워낙 구닥다리라서 켤 때마다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어."

그 말에 아저씨가 성큼성큼 걸어가 불 켜는 꼭지를 탁탁 돌려 봅니다. 역시 잘 안 됩니다.

"할머니, 펜치 어데 있습니껴? 여기를 좀 구부려 봐야겠심더."

할머니가 신발장에 붙은 서랍장을 열어 펜치라는 걸 찾아내 줍니다. 아저씨는 그걸로 가스레인지 불구멍을 이리저리 쑤셔 줍니다. 불구멍도 막혔던 속을 뚫어 주니 좋은지 불꽃을 확확 피워 올립니다.

"고맙수. 번번이."

"아입니더, 할무이. 이만 갈게요. 잘 계시쇼."

아저씨가 인사하며 현관 밖으로 나옵니다. 나도 현관문이 닫히기 전에 잽싸게 아저씨 꽁무니를 따라나섭니다.

"복 받을 껴!"

문 사이로 할머니가 복 받을 거라는 말이 다 들립니다. 나는 할머니 집에서 아무 일도 거들어 드린 것이 없으니 아마도 아저씨께 하는 소리이겠지요. 이럴 때는 조금 아쉽습니다.

'나도 일을 좀 거들어 드리고 오는 건데, 참.'

다음번에 갈 때는 현관에 놓여 있던 할머니의 낡아 빠진 구두를 물고 나와야겠어요. 그거라도 치워 드려야 나도 복 받으라는 소리를 들을 테지요.

오늘은 날씨가 덥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물건을 가지러 가야 합니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선풍기를 틀어 놓고 혼자 가게를 보는 날입니다.

"여기 어디, 집 내어놓은 사람 없어요?"

어수룩한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가게에 들어서며 묻습니다. 나는 과자 상자를 베고 꼬박 잠이 들었다가 얼른 일어나 꼬리를 세웠습니다. 요즘은 워낙 세상이 험해서 아주머니를 괴롭히러 온 사람인지도 모르잖아요.

"멍, 멍!"

나는 그 아저씨에게 일렀습니다.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으니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고요.

"이곳 분이 아니신가 봐예? 여기 좀 앉으시쇼."

아주머니가 앉아 있던 동그란 의자를 얼른 내어 드립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앉으셔야 제가 가르쳐 드리지예."

아주머니가 애교스럽게 웃으며 말을 건네자 아저씨는 마지못해 엉덩이를 의자에 갖다 댑니다.

"집은 뭐 어떤 집이 필요합니껴. 단독 주택 내어놓은 데도 있고 이 근처 이층집은 방 한 칸만 내어놓았다고 하던데예."

"방 한 칸이면 마누라랑 살기 딱 좋은데…."

"그럼, 이층집까지 제가 모셔다 드리까예?"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아주머니보다 더 앞장서 이층집으로 갔습니다.

"석이 엄마, 이분이 방 보러 왔네예. 두 분이 이야기하이쇼. 저는 가게가 비어서 갑니데이."

아주머니가 총총걸음으로 돌아가자 나도 아주머니 꽁무니에 따라붙습니다. 우리 뒤통수에 대고 석이 엄마가 인사를 합니다.

"고맙심데이. 번번이 사람 모시고 와 주고…."

석이 엄마가 존댓말까지 쓰며 깍듯이 인사합니다.

'내게 존댓말까지 하다니. 많이 고마웠나?'

나는 꼬리를 흔들며 뿌듯한 기분이 들어 좋아하는데 아주머니가 나서는 겁니다.

"아닙니더."

저는 기분이 팍 나빠집니다. 모처럼 인사 한 번 듣는데 왜 아주머니가 나서서 아니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잘난 척하는 아주머니를 뒤에 두고 가게로 내달렸습니다. 아주머니는 달리기에서도 내게 이긴 적이 없다니까요.

그런데 가게에 와 보니 옆집 세탁소 아주머니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예, 맛난 우유는 이천백 원이고예. 힘난 우유는 이천삼백 원이라예."

"단배추는 이것뿐인가요? 대형 마트보다 채소들이 싱싱해서 사러 왔더니…."

아가씨는 세탁소 아주머니가 주인인 줄 알고 묻습니다.

"점심때 오이쇼. 아저씨가 물건 가지러 갔심더."

세탁소 아주머니는 주인인 양 대꾸하며, 아가씨가 산 물건값을 받아 돈 통에 넣습니다. 그제야 가게에 들어선 주인아주머니는 세탁소 아주머니께 번번이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번번이? 피!'

저는 피식 웃었습니다. 석이 엄마한테 들은 말을 유식한 체하며 세탁소 아주머니께 써먹으니 웃을 수밖에요.

"아닙니더."

세탁소 아주머니도 번번이가 아니라고 하며 갔습니다.

하편에 계속

파랑새 (우리나라 좋은동화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