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하늘 가게 앞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드는가 싶더니 요즘 들어 부쩍 똥 구린내를 내고 있습니다.

'그 구린내가 은행 알 입에서 나는 냄새라니, 참.'

참고 지내기가 고약합니다. 고약한 일은 그뿐이 아닙니다. 요즘은 배달 손님도 뜸하고, 팔려고 내어놓은 집이 있냐고 묻는 사람도 없습니다. 난 심심해서 구석에서 빈 과자 상자를 뒤집어쓰고 혼자 숨바꼭질을 하며 놉니다. 그래도 심심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아줌마, 이야기 들었어예?"

옆집 세탁소 아주머니가 들어와 아주머니를 보며 묻습니다.

"무슨 이야깁니껴?"

나도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세탁소 아줌마에게 인사하며 다가갑니다.

"얼마 전에 생긴 요 앞, 대형 마트 말이라예. 사람들이 모두 그리로 가니……."

"예, 사람들이 대형 마트로 많이 가지예?"

아주머니가 쓸쓸하게 웃으며 대꾸했습니다.

"사람들 참 의리 없지. 그깐 플라스틱 물통 하나 선물로 준다고 그리로 모두 몰려가니 참."

"어때예? 저라도 덤으로 준다카만 좋은데예, 뭘."

하긴, 나도 생선 대가리 한 개라도 준다면 얼른 달려가 받아먹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동네 사람들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대해 주었는데 이렇게 단골을 싹 바꿀 수는 없지요.

"이러다간 이 집 구멍가게 문 닫는 거 아닙니껴?"

세탁소 아주머니 말에 나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킁킁!"

그렇지만 하늘 가게 아주머니는 내 말에 반대를 하는 겁니다.

"그래도 단골손님은 있지예."

오늘따라 하늘 가게 아주머니가 제게 존댓말까지 쓰는 걸 보니 많이 조용한가 봅니다.

'참 이것 걱정이구만.'

만약 하늘 가게가 문을 닫으면 나라도 입 하나 덜기 위해 대형 마트에 어슬렁거리며 들어가 생선 대가리라도 하나 얻어먹어야 하나, 어쩌나? 생각해 봅니다.

겨울이 다가오자 하늘 아저씨는 대형 마트 길 건너편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벌였습니다. 아저씨가 길에서 지내는 일이 안타까워 나도 아예 아저씨 따라 군고구마 장사를 돕고 있습니다. 제가 돕는 일이라곤 뭐,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우리 군고구마 좀 사 가요. 컹컹!" 외치는 일이 전부이지만요. 그래도 아저씨는 내 등을 쓸어 주며 고마워합니다.

"개돌아, 추운데 함께 있어 줘서 고맙데이. 너는 의리의 사나이인기라."

이런 칭찬은 개털을 날리는 추운 바람에도 몸이 덜 추워지는 약이 됩니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란히 지나가기에 다가가 애교를 떨어 봅니다.

"우리 군고구마 좀 사 가요. 컹컹!"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 말에는 대꾸도 없이 이렇게 말하며 지나갑니다.

"영감, 옛날에 우리 소죽 솥 군불 땔 때 고구마 참 많이 구워 먹었다, 그지요?"

난 쓸쓸해졌습니다. 아저씨 장사를 도와주려고 하는데 일이 잘 되지 않으니까요. 이번엔 귀여운 여자아이와 젊은 어머니가 지나갑니다.

나는 얼른 다가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외쳤습니다.

"우리 군고구마 좀 사 가요. 컹컹!"

그러자 젊은 어머니가 귀가 좀 먹은 듯 이렇게 말하며 지나갑니다.

"우리도 집에 가서 오븐에 고구마 구워 먹자."

나는 아저씨가 딱해 보였습니다. 구멍가게 장사가 안 되어 군고구마 장사라도 해서 돈을 좀 벌어 보려고 한 일이었을 텐데…….

어쩐지 단골손님들도 요즘은 가게 앞을 지나면서 저네들끼리만 속닥거리며 지나갑니다.

'하늘 구멍가게 문 닫을 날도 멀지 않았어.'

뭐, 이런 흉을 보며 지나갔을 테지요. 정말 아저씨네 장사가 안 되면 입 하나 덜기 위해 나라도 집을 나가야 하나 어쩌나.

어느 추운 날 저녁, 나는 할 일 없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쏘다녔습니다. 장사 안 되는 하늘 가게에 죽치고 앉아 있자니 하늘 아주머니 보기가 민망스러웠어요. 아저씨 군고구마 수레에 붙어서 있기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거든요. 그래서 대형 마트 뒷길을 마냥 쏘다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수상한 종이를 나눠 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정말 치사하다는 생각이 팍 들었습니다. 대형 마트를 선전하기 위해 뿌리는 종이가 틀림없을 테니까요. 도대체 뭐라고 쓰여 있는지 글씨나 좀 읽어 볼 양으로 가까이 갔습니다.

불매 운동!

이게 무슨 말일까요? 뜻을 몰라 종이를 나눠 주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세상에!'

우리 하늘 가게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인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들 얼굴이 보였습니다. 심지어 남은 채소를 늘 공짜로 가져가시는 혼자 사는 할머니 모습도 보입니다. 사람들이 하늘 가게를 배신하며 대형 마트를 선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땅에 쭈그리고 앉아 그분들이 외치는 소리에 힘없이 귀를 열어두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절하고 양심적인 하늘 가게를 살립시다. 대형 마트 때문에 구멍가게가 문을 닫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 조금씩 도우며 삽시다. 구멍가게를 살립시다."

아, 저는 우리 집에 오는 단골손님들 손에 그런 글씨가 들려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 글씨가 무거워 땅에 떨어지면 얼른 주워 드리려고 그분들 옆으로 달려갔습니다.

"맞아요. 구멍가게를 이용합시다."

"그럼요. 없이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야지요."

아, 사람들이 흘리며 가는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우리 하늘 가게로 손님들이 몰려드는 모습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어느새 내 둘레엔 개 코를 자극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개돌이의 심장을 자극하는 향기가 아리하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파랑새(우리나라 좋은동화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