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방패

윤문영 글·그림｜파랑새｜1만2000원

거실에서 뛰지 말 것, 어지르지 말 것, 소리 지르지 말 것, 떼쓰지 말 것, 음식 흘리지 말 것, 낙서하지 말 것…. 개구쟁이 '준기'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열 가지도 넘는다. 가족들은 준기가 조금만 말썽을 피워도 크게 혼을 낸다. 오리처럼 '꽥' 소리를 지르고 머리에 꿀밤을 먹인다. 그럴 때면 준기는 할아버지를 부른다. 할아버지는 어느새 뛰어와 가족들을 꾸짖는다.

어느 날 준기는 할아버지에게 특별한 부탁을 한다. '방패'를 만들어 달라는 것. "식구들이 저를 때릴 때 요렇게 탁! 막을 수 있잖아요." 할아버지는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 날 아침, 준기의 머리맡에 빨간색 방패가 놓여 있다. 딱딱한 종이 상자를 오린 뒤 할아버지의 얼굴을 크게 그려넣은 방패다.

신기한 일이다. 평소처럼 준기를 때리고 꼬집으려던 가족들은 '할아버지 방패'에 막혀 넘어지고 발랑 나뒹군다. 아프고 분해도 어찌할 방법을 모른다. 방패를 보고 슬슬 피하기까지 한다. '할아버지 방패'는 정말 '마술 방패'인 걸까.

최근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4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0~17세 아동을 학대한 사례는 총 6796건이었다. 가해자의 80%는 놀랍게도 친부모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동 학대는 우리 주변에서 늘 벌어지고 있다. 잘못을 혼내고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습관적으로 손을 대는 부모도 많다. 더 큰 문제는 그게 아동 학대라는 걸 부모들이 모른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방패'는 가정 내에서 무심코 일어나는 아동 학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밝고 귀여운 그림과 따뜻한 스토리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작가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 곁에는 아이의 단점보다 장점을 발견하고 격려해준 가족들이 있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처럼 아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책 속에서 준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남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이다. 고민 끝에 준기는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방패'를 생각해내기에 이른다. 아이를 보호해줘야 할 가족이 오히려 아이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엄마, 아빠, 누나는 뒤늦게 반성하며 준기의 마음을 풀어주기로 한다.

방패 덕에 가족의 '항복'을 받아낸 준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공원 산책에 나선다. 그런데 갖고 있던 방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상관없다. 할아버지 방패보다 더 든든한 가족이란 울타리를 얻게 됐으니까. 준기는 할아버지에게 말한다. 방패가 꼭 필요한 아이에게 발견되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