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둘 모험가에게 또다시 사춘기가 찾아왔다. 이번엔 작은 요트를 타고 홀로 망망대해로 떠나 세계 일주를 하겠단다. 이미 세계지도를 절반으로 뚝 잘라 한 차례씩 다녀왔던 그는 "그동안 일주(一周)를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냥 다녀오면 재미없다며 스스로 핸디캡도 추가했다. 항구에 내리지 않고, 엔진을 봉인한 채 지구 한 바퀴를 돌 생각이다. 모든 지원을 거부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름하여 '단독·무기항·무동력·무원조 세계 일주'다. 출항을 앞둔 김승진(52세) 선장을 지난달 24일 충남 당진 왜목마을 베이스캠프에서 만났다.

◇대책 없이 돈 지구 반 바퀴

김 선장은 사회 초년병 시절, 맨몸으로 한강·시나노강·양쯔강 등 한·중·일 대표 강을 종단하며 자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익스트림 모험가 겸 PD'였다. 마흔 줄 넘은 2010년, 요트 모험가로 전격 전향했다. 요트 입문 5년차에 불과한 '풋내기 항해사'인 셈이다.

경력은 짧지만, 성과는 제법 거뒀다. 그는 2010년 8월 크로아티아에서 닻을 올려 8개월 동안 2만여 ㎞를 항해, 한국에 도착했다. 지난해엔 2만6000㎞에 달하는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다.

"2010년 항해는 요트 구매와 동시에 이뤄졌어요. 크로아티아에서 요트를 샀는데, 한국까지 보내는 운송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타고 가는 수밖에 없었거든요. (웃음)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요트 인수 전, 인터넷에서 기본 지식을 공부하고 요트 세계 일주 경험자들의 여행기를 통해 항해 도중 실수했던 거나 위험했던 상황만 골라내 익힌 게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더라고요. 첫 항해를 아주 성공적으로 끝냈고, 지난해 두 번째 도전도 별 탈 없이 마무리했죠. 인터넷과 책을 통해 얻은 지식만으로도 요트 항해를 할 수 있다니…. 세상 참 좋아졌어요. 하하."

◇덜컥 결심한 극한의 도전

그는 지난해 태평양 횡단 후 세계 일주를 향한 욕망이 점점 커졌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판단해 곧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덜컥 '급'까지 올렸다. 단독·무기항·무동력·무원조 세계 일주를 결정한 것이다. 홀로 200여 일 동안 바다를 육지 삼아 지내며, 오로지 바닷바람에 의지해 약 4만㎞를 항해하는 아찔한 여정이다.

수식어가 숱하게 붙는 이 항해에 성공한 사람은 드물다. 전 세계 다섯 명에 불과하다. 1969년 로빈 녹스 존스턴(영국)이 세계 최초로 도전에 성공했다. 이어 일본의 호리에 겐이치(1974년·2005년), 제시카 왓슨(호주·2010년), 구오추안(중국)·압히라시토미씨(인도·이상 2013년) 등이 뜻을 이뤘다. 그는 "어느덧 영국·호주·일본·중국·인도 등 5개국이 단독·무기항·무동력·무원조 세계 일주 성공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며 "더 늦기 전에 한국도 명단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며 웃었다. 국내에선 최초의 도전이다.

◇219일간의 아찔한 여정

김 선장은 오는 18일 충남 당진 왜목항에서 닻을 올린다. 귀환은 내년 5월 24일이다. 여정은 한국을 기준으로 동쪽을 향해 219일간 전진, 왜목항으로 복귀하는 코스다.

이번 도전의 최대 난코스는 '케이프혼'이다. 케이프혼은 칠레의 끝자락 남태평양 최남단을 일컫는다. 1년 내내 강한 바람이 불고, 집채만 한 파도가 쉴 새 없이 덮치는 구간이다. 김 선장은 "이곳을 무사히 지나간 사람에게는 '케이프호너'라는 영광이 주어지는데, 그 영예를 얻는 것도 이 도전의 목표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위험도 도사린다. 대표적인 게 해적이다. 김 선장은 어떻게 대처할까. 그가 피식 웃는다. "문제없어요. 해적이 찾기 힘든 아주 먼바다로 다닐 거니까요."

기나긴 여정엔 9t급 요트 '아라파니호'가 함께한다. 아라파니호의 명칭은 바다의 순우리말인 '아라'와 달팽이의 옛말 '파니'를 합쳐 지었다. 김 선장은 "동반자(아라파니호)의 이름 뜻처럼 이번엔 느릿느릿 항해하다가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라파니호엔 최소한의 물품만 싣는다. 그중 먹을거리가 대부분이다. 김 선장은 물 3t, 쌀 60㎏, 김치 60㎏ 등을 채울 예정이다. 채소는 직접 길러서 먹을 계획. 그는 "200여 일 동안 바다의 농부가 한번 돼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항해 중 하루 일과는 고시생 수준이다. 수면 시간은 1일 3시간 이상 넘기지 않는다. 김 선장은 "될 수 있으면 30분씩 쪽잠으로 버틸 계획이다"라며 "바다는 시시각각 변해 언제 위험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하세요!"

그가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 선장은 "난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않는다"며 "하고 싶으면 반드시 한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흔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라고 말해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사람은 훗날 분명히 아무것도 한 게 없을 거예요. 요즘 10대들이 꿈이 없는 이유도 비슷해요. '하고 싶은 건 나중에 크면 다 할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살았으니 꿈이 생길 수가 있나요. 뭐든지 해봐야 미래가 그려지지 않을까요? 전 여태껏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고 살았어요. 꿈이 흐려질 때쯤 새로운 걸 찾아 도전했죠. 이번 세계 일주도 그중 하나예요. 꿈이 있으면 하루하루가 마냥 즐거워져요. 여러분도 하고 싶은 거 하세요. 저처럼 행복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