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가면 꼭 만나는 선생님이 있다.

"잘 지내냐?"

빙그레 웃으며 말하시는 선생님은 4학년 때 우리 담임이시다. 연세는 많으시지만 키가 작으시며, 동그란 안경을 끼고 계실 땐 해리포터를 닮았다.

4학년 첫날부터 김정호 선생님은 우리에게 일기 숙제를 내주셨다. 시험기간을 빼고는 매일 일기 숙제가 있었다. 글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투정을 부리면 인자하신 아버지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회 공부를 하면서도, 국어 공부를 하면서도, 과학 공부를 할 때도 선생님의 재미있는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기 주제를 찾지 못하는 우리에게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적어보라는 힌트도 주셨다. 그렇게 해서 내 일기도 5줄, 6줄, 7줄…. 점점 길어졌다. 5학년 올라갈 무렵엔 선생님이 적어주신 댓글보다 내 일기가 훨씬 길었다.

6학년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30명이나 되는 우리 일기를 한줄 한줄 읽어보시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교실에 들어가면 언제나 우리보다 일찍 와 계셨던 선생님. 우리 일기장을 보며 미소 짓는 선생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생각이 날까?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생님께선 정년퇴임을 하셨다. 내년에 가시는 줄 알았는데…. 인사도 못 드리고 선생님과 이별을 했다.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 갔다가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렸다. 이상한 기분이다. 복도나 화장실에서 뵐 때 인사도 잘하고 할 걸 후회가 됐다.

4학년 때 내가 쓴 일기는 모두 12권이다. 매일 일기 때문에 글짓기를 하면서 선생님을 조금 원망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정말 감사하다. 그때 일기장은 내 작품집이 되었고, 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적어주신 댓글을 읽는데 콧등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지막한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야들아,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 알았나? 그리고 행복은 겸손의 문으로 들어와서 짜증의 소리를 듣고 간다. 알았재?"

선생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평〉 아주 감동적인 글이다. 가슴이 뭉클할 만큼. 화장실 갈 때마다 만나던 4학년 담임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글쓴이의 마음이 글 전체에 스며 있다. 따로 떼어놔도 이야깃거리가 많은 일기장과 선생님을 한데 버무려 맛난 김치처럼 잘 익은 글이 됐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언급된 선생님의 말은 누구나 평생 가슴에 새겨 간직해야 할 가르침이다. 이처럼 훌륭한 선생님과 함께 생활한 글쓴이는 행운아다. 선생님 덕분에 생겨난 12권의 일기장은 글쓴이의 역사가 되고, 글쓰기 연습이 되어 글쓴이가 마침내 산문부 장원을 거머쥐게 했으니 말이다. 아마도 특선 소식을 선생님이 아시면 무척 기뻐하시며 보람을 느끼실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