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독립'이란 글자를 가슴에 아로새겼다. 할아버지의 손녀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했다. 때론 '누구의 손녀'란 사실이 중압감이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평범하게 살던 그에게 어느 날 누군가가 건넨 한 마디가 섬광처럼 다가왔다. '네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처럼 번영할 수 있었다.' 이 말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윤봉길(1908~1932년) 의사의 장손녀' 윤주경(55세) 신임 독립기념관장 얘기다.

◇체험 위주 전시물로 꾸며진 독립기념관

지난달 23일 제10대 관장으로 취임한 그는 독립기념관 첫 여성 수장이기도 하다. 앞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와 독립기념관 이사를 지냈다. 임기는 2017년 9월까지 3년이다. 지난 15일 오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마주한 그는 온화하고 소탈했다.

"아직 어리벙벙합니다(웃음). 기쁨보다 두려움이 커요. 얼마나 의미 있는 자리인지 여기 와서 더욱 실감하게 됐거든요. 업무 파악이요? 이제 시작이죠."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독립기념관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딱딱한 주입식 박물관이 아니란 점을 특히 강조했다. "2006년도부터 2010년까지 연차적으로 전시물을 교체했어요. 재개관 때 와보곤 무척 놀랐어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흥미 위주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했더라고요. 교육 프로그램도 풍성합니다. 국정감사에서도 칭찬받은 독도학교가 대표적이에요. 주변 자연환경은 사계절 내내 어찌나 아름다운지요.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손색없어요."

윤 관장은 이날 막을 올린 특별전시도 소개했다. 오는 11월 30일까지 계속되는 독립기념관과 폴란드 아우슈비츠 국제교류전 '나치 독일 죽음의 수용소'다. 지난 세기 이웃나라의 침략으로 큰 고통을 받은 두 나라가 아픈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침략의 주체와 상황은 달랐지만 한국과 폴란드 모두 참혹한 식민지 시대를 겪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윤봉길 할아버지는 몸과 마음이 튼튼했던 분"

'개인의 가족사'임과 동시에 '역사'인 이야기를 꺼냈다. 할아버지이자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에 대해 물었다. "어린이들에게 몸과 마음이 튼튼했던 분, 또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셨던 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실제로 운동도, 공부도 정말 열심히 하셨죠. 3·1운동을 접하고 (초등)학교를 그만두셨어요. 그동안 받았던 교육이 일본 제국주의에 순응하는 교육이란 걸 깨달으신 거죠. 이후 서당에 다니면서 한학을 공부했고, 새로운 신식 학문은 책을 통해 익히셨다고 해요."

농촌계몽운동을 펼치던 윤봉길은 1930년 독립운동에 몸담기 위해 상하이로 떠난다. 임시정부 지도자인 백범 김구를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 의거를 도모한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겸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 행사장에서 폭탄을 던진 그는 현장 체포된다. 그해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에서 순국했다.

"할아버지의 의거가 침체된 임시정부를 되살리는 불씨가 됐다고 해요. 감동 받은 중국 장개석 총통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건 물론, 카이로회담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주장했거든요. 할아버지뿐 아니라 독립을 위해 몸바친 모두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3·1운동 세계화를 향해 뛴다

윤주경 관장은 임기 내에 하고픈 일이 많다고 했다. '지역 독립운동사 경진대회' 개최도 그중 하나다. 어린이·청소년이 직접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의 독립운동 얘기나 유적을 조사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전국이 독립운동 유적지"라고 했다.

"다가오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의 세계화'도 꾀할 방침입니다. 비폭력만세운동인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 나아가 간디의 비폭력저항운동에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어요. 얼마나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인지요. 이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릴 겁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역사는 곧 우리 정체성입니다. 어린이 여러분이 올바른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 말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나라를 지키는 작은 실천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독립기념관에 자주 놀러 오세요. 역사 지식을 쌓고 세계를 향한 눈도 키울 수 있으니까요."

독립기념관

충남 천안 동남구 목천읍 삼방로 95에 위치하고 있다.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을 계기로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돼 1987년 8월 15일 개관했다. 394만㎡ 규모에 76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7개 전시관, 4D입체상영관, 태극기 한마당, 밝은누리관, 독립군 체험학교, 시·어록비 등 야외전시물이 주요 시설이다. 전시관은 우리 겨레의 5000년 역사를 담고 있다. △겨레의 뿌리(제1관) △겨레의 시련(제2관) △나라 지키기(제3관) △겨레의 함성(제4관) △나라 되찾기(제5관) △새나라 세우기(제6관) △함께하는 독립운동(제7관)을 주제로 한다. 제7관엔 특별전시장과 더불어 어린이 대상 독립운동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다채로운 교육도 진행된다. 관람 시간은 하절기(3~10월)의 경우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11월~2월)엔 오후 5시까지다. 매주 월요일은 쉬며,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i815.or.kr)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