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맨 먼저 태어났으면 '몇녀 몇남'

고려 시대에도 호적과 족보가 있었어. 조선 시대와는 다르게 고려 시대에는 여자도 호주가 될 수 있었단다. 호적이나 족보에 기록할 때는 아들 먼저, 딸을 나중에 기록하지 않고 아들딸 가림 없이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했어. 친손자와 외손자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 기록했단다. 자녀 수를 말할 때는 무조건 '몇남 몇녀'라고 하지 않고, 딸이 맨 먼저 태어났으면 '몇녀 몇남'이라고 말했단다.

그런데 조선 시대 후기가 되면 호적과 족보에서 무조건 아들 먼저, 딸을 나중에 기록하는 것으로 바뀌게 돼.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좀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고려는 아버지 쪽 친척뿐 아니라 어머니 쪽 친척도 동등하게 중시하는 사회였는데, 조선 시대에 들어 아버지 쪽만 중시하는 사회로 바뀌었기 때문이야.

요즘은 어떻지? 불과 20여 년 전까지도 조선 시대의 영향이 아직 남아서 아버지 쪽을 훨씬 중시했단다. 그 예로, 법에서도 아버지 쪽은 8촌까지 친척으로 인정했지만, 어머니 쪽은 4촌까지밖에 친척으로 인정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1990년에 법이 바뀌면서 비로소 아버지 쪽과 어머니 쪽 모두 동등하게 8촌까지 친척으로 인정하게 됐단다.

법이 바뀌었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활과 관습이 이미 상당히 바뀌었다는 뜻이야. 그래도 여전히 아버지 쪽 친척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만을 중심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지. 그런가 하면 부모 양쪽을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뜻에서 아버지 성씨와 어머니 성씨를 같이 쓰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단다.

◇성씨와 본관은 언제부터?

'경주 김씨' 하면 경주는 본관이고, 김씨는 성씨란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성씨와 본관을 갖게 돼. 그러나 고려 시대 이전에는 왕이나 몇몇 대귀족만 성씨와 본관을 갖고 있을 뿐, 대개의 사람은 이름만 있었단다. 호족 집안에서 태어난 왕건도 처음에는 성씨 없이 왕건 자체가 이름이었어. 나중에 이름 앞자리의 '왕' 자를 성씨로 삼은 거야.

성씨와 본관이 널리 사용된 것은 고려 때부터야. 고려 초에 지방 호족들에게 각자의 근거지를 본관으로 삼게 하고 성씨를 내려 주면서 생겨났어. 본관이 어딘가에 따라 내야 하는 세금이 달라지고, 관직에 나갈 수 있는지가 결정됐어. 고려 사람들은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랐던 거야. 천인인 노비는 고려 시대는 물론 조선 시대에도 이름만 있었어. 그럼 지금처럼 누구나 성씨와 본관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1900년대에 새로운 호적 제도가 실시되면서부터란다.

◇고려장은 고려의 풍습인가?

부모가 늙으면 깊은 산속에 버리는 풍습을 '고려장'이라고 해. 지금도 시골 마을에 가면 고려장을 했던 곳이라는 장소가 전해 온단다. 가끔씩 신문에 '현대판 고려장'이란 기사가 실리기도 하지. 늙은 부모를 돌보지 않는 불효를 꼬집는 말로 '고려장'이 사용되고 있어. 그런데 정말 고려 시대에는 늙은 부모를 내다 버렸던 걸까?

고려장 이야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일본에도 널리 퍼져 있어. 유럽과 중동 지방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 그러니까 고려장은 우리만의 고유한 풍습이라고 할 수 없단다. 게다가 고려 시대의 장례 풍습은 더더욱 아니었어. 고려 때 고려장이 행해졌다는 것을 알려 주는 자료나 유물, 유적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어. 시골 마을에서 고려장을 했던 곳이라고 전해 오는 장소는 실은 고려장과 아무 상관 없는 곳이란다.

고려 시대의 장례 풍습이 아닌데도 어째서 고려장이라 불리게 되었을까? 불교 경전인 '잡보장경' '기로국' 조에 고려장 이야기가 실려 있어. 기로국은 한자로 '노인을 버리는 나라'라는 뜻이야. 이 기로국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기로국'이 '고려국'으로, 또 '기로의 장례'라는 뜻인 '기로장'이 '고려장'으로 변해 굳어진 것이 아닐까 해. 즉 고려장은 고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란다.

그럼 고려에선 어떻게 장례를 치렀을까?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을 주로 했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절에서 스님의 인도를 받아 화장한 후 유골을 절에 모셔 두고서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올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유골을 항아리나 돌로 만든 작은 관에 담아 땅에 묻었단다. 유골을 묻지 않고 산이나 강, 바다에 뿌리기도 했지. 장례부터 제사까지 들어가는 비용은 자식들이 아들딸 구분없이 똑같이 분담했어.

화장하지 않고 무덤을 만들어 묻는 매장도 했어. 특히 왕들은 주로 매장을 했단다. 관리의 무덤은 생전의 관직에 따라 무덤의 크기와 높이가 각각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크게 만들 수 없었어.

관이나 무덤을 만들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구덩이를 파고 묻거나 그냥 풀 따위로 덮어 주는 것으로 그치기도 했어. 이런 것을 '풍장'이라고 해.

그러니까 고려의 장례는 '절'에서, 조선의 장례는 '사당'에서 치렀다고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