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왕실에는 몇 대째 피바람이 불었어요. 왕이 되기 위해 혹은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적이 될 만한 자의 목숨을 빼앗았어요. 그게 설령 가족이고 형제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었지요.

막 왕이 된 봉상왕도 주변 사람들을 무조건 의심했어요. "작은 아버지는 왕실에게 존중을 받는 자이니 언제든 왕의 자리를 위협할 테지. 내 아우 또한 믿을 수 없어!"

결국 봉상왕은 작은 아버지와 동생의 목숨을 빼앗았어요. 동생의 아들이자 조카인 을불마저 궁 밖으로 쫓아내 버렸어요.

어린 나이에 세상으로 내몰린 을불은 머슴살이를 하며 근근이 살았어요. 하지만 너무 고돼 다시 거리로 나오고 말았어요. 을불은 푼돈으로 소금을 사 소금 파는 일을 시작했어요. 서쪽 바닷가에서 소금을 사다가 산골 마을을 돌며 소금을 팔았지요. 하루는 날이 저물어 한 노파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됐어요. 을불은 그 대가로 노파에게 소금을 한 말이나 주었습니다. 그런데 노파는 만족하지 않았어요. 몇 번이고 소금을 더 달라고 요구했지만 을불은 소금을 더 줄 수는 없다고 했어요. 노파는 앙심을 품고 을불의 가방에 자기 신발을 몰래 넣어 두었어요.

다음 날 아침, 을불이 길을 떠나려는데 노파가 을불을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도둑 잡아라! 은혜도 모르고 내 신발을 가져가는 도둑놈!" 신발을 훔치지 않았다고 말해도 낯선 곳에서 온 을불의 말을 믿어 주는 자는 없었어요. 결국 을불은 관리에게 잡혀 가 소금도 빼앗기고 곤장까지 맞고는 마을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한편, 봉상왕은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신하들에게는 포악하게 행동해 나라 꼴이 엉망이었어요. 게다가 굶주리는 백성들을 데려다 궁궐을 짓는 일까지 시켰으니 원성은 끝이 없었습니다.

"왕의 후손이신 을불 도련님을 찾아야만 합니다." 신하들은 을불을 찾으려 방방곡곡을 이 잡듯이 뒤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나룻배에 앉아 있는 허름한 행색의 젊은이가 눈에 띄었어요. 꾀죄죄하고 남루했지만 그 자태에서 귀티가 나고 품위가 있어 보였지요. 그 사람이 바로 을불이었어요.

신하들이 다가갔지만 을불은 딱 잡아뗐어요. "저는 단지 소금을 팔러 다니는 천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을불에게서 남다른 기운을 느끼고 끈질기게 설득했어요. "지금 임금이 그 위엄을 잃어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부디 임금의 자리에 오르시어 어진 정치를 펼쳐 주십시오."

을불은 신하들의 진심 어린 부탁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어요. 얼마 뒤, 봉상왕은 궁궐에서 쫓겨나고 을불이 고구려의 열다섯 번째 임금, 미천왕이 됐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300년, 미천왕 즉위

소금 장수였던 미천왕은 중국 세력을 몰아내는 데 힘을 쏟아 영토를 넓혔습니다. 국내성을 도읍으로 하고 있던 고구려는 남쪽으로는 평양의 대동강 유역까지 땅을 넓혀 세력을 키웠어요. 밖으로는 힘을 떨치고 안으로는 백성들을 돌보아 고구려는 농업과 상업이 크게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상상의집 제공·역사 왔수다(최설희 글·이진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