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데뷔 무대였다. ‘쇼트트랙 여왕’ 심석희(17세·서울 세화여고)를 제치고 지난 16일 2014~2015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2차 대회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열린 1차 대회에선 1000m 은메달, 3000m 계주 금메달을 땄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시니어 무대를 밟은 최민정(16세·경기 성남 서현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월드컵 12개 대회 연속 금빛 레이스를 펼친 심석희와 함께 한국 여자 쇼트트랙 ‘투톱’으로 부상했다.

◇스케이트 인생 12년, 성장 속도 남달라

"사실 시니어 올라와서 첫 월드컵 참가라 기대 안 했는데,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서 기뻐요. 석희 언니가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좀 더 편하게 레이스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요. 먼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줬죠. 덕분에 아리아나 폰타나(24세·이탈리아) 선수를 추월해 1500m 1위를 할 수 있었어요."

지난 26일 오후 1시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최민정은 겸손했다. 조용하고 말수가 없었지만 이야기하다 보니 어른 못지않은 내면의 힘이 느껴졌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빵 이야기를 하면서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은 영락없는 고1 소녀였다.

최민정 선수가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건 유치원생이던 5살 때다. 아버지 권유로 당시 집 근처 아이스링크장에서 진행된 겨울방학 스케이트 특강에 참여했다. 그는 "재밌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얼음 위를 쭉 미끄러져 나가는 게 정말 재밌더라고요. 속도감도 즐길 수 있고, 시원하기도 하고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쇼트트랙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쇼트트랙의 매력이요? 음,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단 점이요."

초등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인 2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나가는 대회마다 시상대에 섰고, 중학생이 되어선 숱한 대회에서 고교생 언니들을 따돌리고 1등을 하며 '특급 신인'의 등장을 알렸다.

중3이던 작년엔 주니어 대표 선발전에서 전 종목 1위를 기록했고, 올 초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선 3위에 랭크됐다. 올해 9월까지 3차에 걸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을 과시했다. 특히 3차 선발전에선 종합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8 평창에서 '최민정'을 응원해주세요!"

현재 태릉선수촌에 머물고 있는 최민정의 24시간은 알차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부터 8시까지 아침 운동을 하고, 잠시 쉬었다 점심을 먹는다. 오후 훈련은 2시부터 6시까지. 저녁을 먹은 뒤엔 개인 훈련을 하거나 휴식 시간을 갖는다. 잠은 보통 11시 이전에 잔다고 했다.

"소문대로 선수촌 밥이 정말 맛있더라고요. 엄마표 밥상엔 약간 못 미치지만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빵이 여러 종류 나와서 좋아요. 특별히 체력 보충을 위해 챙겨 먹는 음식은 한약과 비타민 정도? 쉴 땐 주로 자요. TV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도 있고요."

틈틈이 휴대폰이나 노트북으로 외국 선수 경기 영상을 찾아보기도 한다. 룸메이트는 심석희. 최민정 선수는 "언니가 잘 챙겨준다. 맛있는 게 생기면 꼭 나눠준다"며 웃었다.

주종목은 장거리인 1500m, 3000m 계주다. 아웃코스로 추월할 때 순간적으로 내는 스피드가 빠르다는 게 장점이다. 방향을 바꾸는 스케이팅 기술도 탁월하다. 정작 본인은 단점이 많다고 했다. "고칠 부분이 더 많아요. 일단 스타트가 느리고요, 선두에서 레이스를 이끌 때 노련함도 부족해요."

시합 결과엔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성적'보단 최선을 다해 노력한 '과정'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초등 쇼트트랙 꿈나무들에게는 "즐기면서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전했다.

지금 최민정의 꿈은 단 하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계주와 더불어 개인 종목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는 거다. 그러기 위해 '레전드' 진선유(26세) 선수처럼 되는 게 목표다. "월등한 경기 운영 능력과 막판 스퍼트 실력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한창 진행 중인 올 시즌 다음 경기는 오는 12월 12일부터 사흘간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되는 월드컵 3차 대회다.

"성적보단 1·2차 대회 때 긴장해서 급하게 추월하다 충돌을 하는 등 실수했던 점을 보완하는 데 집중하고 싶어요." 어리지만 단단한 마음가짐이 국가대표다웠다. 인터뷰를 마치고 오후 훈련을 위해 재빨리 빙상장으로 향하는 뒷모습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