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의 아버지는 충숙왕이고 어머니는 명덕 태후 홍씨야. 그런데 공민왕의 할머니는 원나라 공주란다. 할아버지 충선왕이 국제결혼을 한 거냐고? 개경 환도 후 고려의 왕들은 무조건 원나라 공주를 왕비로 맞아야 했어. 또, 원나라는 고려 왕을 마음대로 임명하거나 왕위에서 쫓아낼 수 있었어. 왕이 될 고려 왕자들은 어려서부터 원나라에 가서 살다가 원나라 공주와 결혼해서 고려로 돌아와 왕위에 올라야 했어.

◇원나라 간섭 벗어나기 위해 개혁

▲ 왕비 노국대장공주와 공민왕의 초상… 서울 종묘의 공민왕 사당에 있어. 조선 시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종묘에 고려 왕인 공민왕의 사당이 있다니 웬일일까?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감한 개혁 정치를 편 공민왕의 업적을 기리고자 한 것 아니었을까? 원래 조선 태조 때 종묘에 사당을 짓고 영정을 모셨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서 그 후 다시 그렸다고 해.

고려 왕은 이름 앞에 '충' 자를 붙여서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을 나타내야 했어.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등의 이름은 그래서 생긴 거란다. 원나라는 고려의 독립은 인정해 주되,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신을 보내 자초지종을 시시콜콜히 따졌어. 만약 고려 왕이 말을 잘 안 들으면 왕을 다른 사람으로 갈아 치웠단다.

공민왕은 열두 살 때부터 부모님과 헤어져서 원나라에 가서 살았어. 왕이 되기 전 공민왕의 이름은 강릉 대군이었단다. 그리고 원나라 공주와 결혼했지. 공주의 이름은 보탑실리. 보통 '노국대장공주'라고 불러. 공민왕은 스물두 살 때 노국대장공주와 함께 고려로 돌아왔어. 10년 만의 귀국이었지. 몽골 옷을 입고 머리 모양도 몽골식으로 변발을 하고 왔어.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이연종이라는 신하가 상소를 올렸어. "변발과 몽골 옷은 고려의 제도가 아니니 본받지 마소서."

공민왕은 상소를 본 즉시 몽골 옷을 벗어 버리고 머리 모양도 고려식으로 바꿨어. 이것은 공민왕이 앞으로 어떤 정치를 펴나갈 것인지를 만천하에 알리는 행동이었어. 공민왕은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고려의 자주와 독립을 되찾고, 개혁 정치를 펴고자 마음먹었던 거야.

▲ 공민왕의 글씨… 공민왕은 그림뿐 아니라 글씨에도 뛰어났어. 사진은 복주 목사 정광도에게 내린 공민왕의 교서란다.

왕비인 노국대장공주도 다른 원나라 공주들과는 달리 남편 공민왕을 적극 도왔어. 노국대장공주는 원나라 공주임을 내세워 남편을 무시하거나 위세를 부리지 않았고, 고려 백성들로부터 마구 공물을 거둬들이지도 않았단다. 공민왕과의 사이도 퍽 좋았다고 해.

공민왕의 개혁 정치는 부원배, 친원파를 쫓아내는 일부터 시작됐어. 이들을 쫓아내지 않고서는 원나라로부터 독립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지. 공민왕은 부원배의 우두머리인 기철과 그 집안사람들을 쫓아냈어. 기철은 공녀로 간 누이동생이 원나라 황제인 순제의 눈에 들어 황후가 된 것을 믿고 횡포를 부리던 인물이야.

기 황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 기 황후는 처음에는 차 따르는 궁녀가 되어 궁궐에서 살게 됐어. 기씨는 단정한 생김새와 지혜로 원나라 황제인 순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제2황후가 됐단다. 제1황후는 몽골 여인이었지. 원나라에는 몽골인이 아닌 여자는 황후로 삼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는데도, 순제는 원칙을 무시하고 기씨를 황후로 맞아들였단다.

기 황후의 아버지 기자오는 고려의 낮은 관리였는데, 딸이 원나라 황후가 되자 하루아침에 권세가가 됐어. 또, 오빠 기철도 누이동생을 믿고서 함부로 횡포를 부려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단다. 그러나 기 황후의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못했어. 원나라가 새로 일어난 명나라에 밀려 멀리 몽골 초원으로 쫓겨났기 때문이야. 그가 낳은 아들 아이유시리다라는 황제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망해 가는 나라와 운명을 같이했어. 기 황후의 최후가 어찌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단다. 공민왕은 공녀 보내는 일을 중단시켰어. 또, 원나라 땅이 되어 있던 철령 이북의 땅을 공격하여 되찾았단다. 동시에 사회 개혁을 단행했어. 공민왕은 개혁을 이루기 위해 신돈이란 인물을 발탁했단다.

◇신돈을 등용하다

신돈은 승려였어. 집안은 보잘것없었지만 과단성 있는 인물이었지.

공민왕은 신돈을 사부로 삼고 개혁을 맡겼어. 공민왕은 왜 신돈을 등용했을까? 비록 기철 일당을 쫓아내긴 했지만, 조정에는 부원배, 친원파들의 뿌리가 매우 깊게 남아 있었어. 공민왕의 뜻대로 원나라로부터 독립과 자주를 이루려면 부원배, 친원파와 아무 상관없는 참신한 인물이 앞장서서 개혁을 이끌어야 했지. 신돈은 바로 그 점에서 꼭 적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공민왕이 점찍은 거야.

공민왕과 신돈이 개혁 사업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니? 부원배, 친원파들에게 억울하게 땅을 빼앗겼거나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들을 제자리로 되돌려주는 일이었단다. 즉, 전민변정도감이란 관청을 세워 '전'과 '민', 다시 말해 토지와 백성의 소속을 바로잡았어. 관청의 총책임자는 신돈이었지.

백성들은 너무나 기뻐하며 신돈을 '성인'이라 부르면서 우러러보았단다. 하지만 부원배, 친원파들은 그를 몹시 미워했어. 결국 신돈은 부원배, 친원파들에 의해서 반역 음모를 꾀했다는 지목을 받고서 처형당하고 말았단다.

공민왕은 왜 그를 살려 주지 않았을까? 그건 말이다, 공민왕 역시 신돈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신돈이 죽고 얼마 안 돼 공민왕도 신하들에게 살해되고 말았어. 공민왕이 죽은 뒤, 고려는 급속하게 기울어 가기 시작했단다.

'고려사'라는 역사책에는 신돈과 공민왕이 형편없는 인물로 묘사돼 있어. 신돈은 나라를 망친 요망한 중이요, 공민왕은 제대로 정치를 못하고 타락을 일삼은 왕으로 기록돼 있단다. 이것은 '고려사'를 쓴 이들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야. 고려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으며 조선의 건국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쓴 거야. 그러나 실제 신돈과 공민왕은 기울어 가는 고려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