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데렐라'란 별명이요? 마음에 들어요. 많은 분들한테 저를 알린 첫 별명이잖아요. (손)흥민이도 장난삼아 절 그렇게 부르곤 했어요. 슈틸리케 감독님도 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헤이, 솔저(soldier·군인)'라고 하셨죠(웃음). 꿈 같은 시간이 지나고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지난달 26일 오전,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만난 '상병' 이정협(24·상주 상무)이 말했다. 군데렐라는 군인과 신데렐라가 합쳐진 신조어.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2골을 몰아치며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의 준우승을 이끈 그에게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정협은 이 대회가 끝난 뒤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표한 '아시안컵에서 새롭게 빛난 별 5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무명 선수였지만 짜릿한 골로 팬들에 '각인'

불과 2달여전만 해도 이정협은 무명에 가까웠다. 소속팀 상주에서 대부분 교체 출전하는 백업 공격수였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K리그에서 4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그런 그가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의 눈에 띄어 지난해 12월 아시안컵 멤버로 '깜짝 발탁'됐다. 연령별 대표팀에 단 한 번도 합류한 적 없었던 그다.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홍보용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들 거라고 전혀 기대 안 했어요. (그 사실을) 친구가 기사 보고 말해줘서 알았죠. 둘이 부둥켜안고 소리 질렀어요. 난생처음 태극마크를 달게 돼 감격스러웠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감이 밀려오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유명한 선수도 아니고,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어요."

그러나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이정협은 아시안컵을 앞두고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리며 성공적인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아시안컵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다. 호주와의 A조 조별리그 3차전에 선발 출전해 결승골을 넣었다.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도 선제 헤딩골을 넣으며 2대0 승리의 주역이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전 이후 자신감이 좀 생겼어요. 대회 직전에 가진 슈틸리케 감독님과의 일대일 면담도 큰 힘이 됐죠. '부담 가지지 말고 평소 네가 훈련장에서 하던 대로 해라. 잘하든 못하든 내가 책임진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감독님은 '다 같이 호흡하는 축구' '즐기는 축구'를 강조하셨어요. 경기 전에 매번 동기 부여가 되는 영상을 보여주곤 하셨죠. 호주 교민이 저희 경기를 보고 힘을 얻는다는 내용도 있었어요."

그가 꼽은 가장 짜릿하고, 아쉬웠던 경기 모두 호주전이다. 우리나라는 2015 아시안컵 본선에서 호주와 두 차례 맞붙었다. 조별리그 3차전과 결승전에서다. "처음 선발 출전한 조별리그 3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무척 기뻤어요. '미리 몸을 던진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는데 운 좋게 공이 발에 와 닿았죠. 결승전에선 공격수로서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교체돼 팀한테 미안했어요. 다들 120분간 정말 열심히 뛰었는데…. 더 잘 준비해서 다음번엔 꼭 아시아 최고 자리를 되찾아오겠습니다."

◇"가슴에 남는 축구를 하겠습니다!"

이정협이 축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어릴 적부터 동네 친구들과 집 앞 골목을 누비며 공 차는 걸 눈여겨본 아버지가 축구부 입단을 제안했다. 마냥 축구가 좋았다는 그는 "그해 2002 한·일 월드컵이 개최됐다. 황선홍·안정환 선수를 보면서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당시 TV에서 봤던 (차)두리형과 이번에 대표팀에서 만나 감회가 남달랐어요. 제주 전지훈련 소집 당시 제가 군복을 입고 갔는데, 형이 팬인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최고참인 형은 까마득한 후배인 제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공격과 수비에 대한 조언을 두루 해주곤 하셨어요. '이상병!' 하면서요(웃음)."

키 186㎝에 몸무게 76㎏. 체격 조건이 뛰어난 이정협은 직선 움직임과 헤딩에 능한 장신 공격수다. 그러나 골 결정력이나 볼을 다루는 능력은 부족한 편. 그는 "이를 보완해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고, 2018 러시아 월드컵 무대도 밟고 싶다"고 말했다.

"유럽의 여러 리그 중 왜 하필 분데스리가냐고요? 전 세계적으로 축구 팬이 가장 많은 리그라서요. 일단 올해의 제1 목표는 K리그 챌린지(프로축구 2부리그)에 속해 있는 우리 팀이 우승을 해서 클래식(1부리그)에 올라가도록 하는 겁니다. 오는 10월 문경에서 열리는 세계군인체육대회 1등도 노리고 있습니다. 대회가 끝난 다음날(12일)이 제 전역일인데,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축구선수를 꿈꾸는 어린이들에게 한 마디 부탁했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분명히 올 거예요. 그럴 때면 좀 더 앞을 내다보세요.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저처럼요. 저 또한 아시안컵에서 반짝 떠오른 선수가 아니라, (박)지성이형처럼 사람들한테 존재감 있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슈틸리케 감독님 말씀처럼 가슴에 남는 축구를 할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K리그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