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빈(21·한국체대)의 질주가 무섭다. ‘스켈레톤’에 입문한 지 3년. 지난 2014~2015 시즌 출전한 생애 첫 월드컵에서 은메달 한 개와 동메달 두 개를 수확했다. 썰매 3대 종목(스켈레톤·봅슬레이·루지)을 통틀어 우리나라 선수가 월드컵에서 메달을 딴 건 처음이었다. 이달 7일 독일에서 막을 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 스켈레톤 역대 최고 성적인 8위에 올랐다. 경기에 나갈 때마다 ‘최초’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세계 랭킹은 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대한체육회는 윤성빈을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지목했다.

"지난 시즌이죠? 100점 만점에 80점 정도였던 것 같아요."

24일 오후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타트 훈련장에서 만난 윤성빈 선수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점수를 불렀다.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부족한 부분도 분명 있었어요. 운도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독일 월드컵 땐 트랙 안에 아주 조그만 돌이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달리다가 밟았어요. 돌이 썰매 날에 껴서 방향이 틀어지는 바람에 13위로 밀렸어요. 다 경험이죠."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캐나다 월드컵을 떠올릴 땐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 있는 코스였어요.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기대한 것보다 더 기록이 잘 나왔어요. 희망을 봤다고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만 꿈꾸던 것들이 현실에서 이뤄질 수도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윤성빈의 고향은 경상남도 남해다.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 왔다. 신림고 3학년이던 2012년 여름 스켈레톤을 만났다. 서울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임원이던 학교 체육 선생님의 권유였다. 평창 훈련장으로 보내진 윤성빈은 바퀴 달린 연습용 썰매를 밀면서 달려나가는 '스타트 훈련'을 죽어라 반복했고, 그해 9월 열린 제1회 스타트챔피언대회에서 우승하며 스켈레톤 국가대표가 됐다.

'진짜 썰매'를 만져본 건 그로부터 한 달 뒤였다. "대회 참석을 위해 외국으로 나갔어요. 거기서 처음 썰매를 타봤어요. '잘할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썰매를 타고 내려가다 얼음벽에 손이 딱 부딪혔는데 그 순간 당장 내리고 싶었어요. 생각해보세요. 100㎞ 넘는 속도로 내려가다 맨 벽에 부딪혔으니까요. 너무 아팠어요. 속으로 '이거 못하겠다'고 생각했죠."

마음대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2개월은 버텨야 했다. 등 떠밀려 억지로 썰매를 탔다. 벽에 부딪히는 횟수가 점점 줄었고, 어느 정도 썰매를 조종할 수 있게 되자 재미가 붙었다. "잘 타는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동영상으로 찾아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나도 월드컵에 나가고 싶다.' 목표가 생긴 거죠."

스켈레톤의 최고 속도는 시속 140㎞다. 1200m가 넘는 구불구불한 트랙을 60초 이내에 주파해야 한다. 커브를 돌 땐 가속 때문에 엄청난 중력을 받게 된다. 트랙에 따라 중력의 5배 가까운 압력을 받는 곳도 있다. 고개를 들 수가 없고 머리는 자꾸 아래로 박힌다.

윤성빈은 "막상 경기를 시작하면 중력을 느낄 여유조차 없다"고 말했다. 계속 다음 코스를 떠올리며 '몸으로' 썰매 방향을 조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전 방법은 다양한데 기본적으로 무릎, 발, 어깨를 사용한다. 오른쪽으로 돌고 싶다면 왼쪽 어깨와 오른쪽 무릎을 누르는 식이다. "스켈레톤이 쉽고 단순해 보여도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알아내야 하고 풀어내야 할 게 끝이 없어요. 그게 스켈레톤의 매력이에요."

다음 시즌을 대비한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시작한 지 이틀째. 이날 윤성빈은 "갑자기 무리한 탓인지 오늘은 온몸이 아프다"고 말했다. "평창 생각하면서 버티는 거죠. 좀 식상한 말이지만 제 라이벌은 저 자신이에요. 힘든 훈련을 받을 때마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정말 많이 들거든요. 하기 싫은 내 마음부터 극복해야 다른 사람도 이길 수 있는 거니까요."

국가대표가 된 뒤 윤성빈은 75㎏이던 몸무게를 10㎏ 이상 늘렸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가속도가 붙어 기록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땐 하루 여섯 끼씩 먹었어요. 억지로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은 그 기분 모를 거예요.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고 배가 너무 아파요." 현재 몸무게는 84㎏. 이번에는 90㎏까지 찌워볼 생각이다. "새 시즌 목표는 세계 랭킹 3위예요. 그래도 지난 시즌보다는 잘해야 할 것 같아서…(웃음)."

평창 올림픽 메달에 가능성에 대해 묻자 윤성빈은 "목표는 금메달"이라고 했다. "매일 밤 잠자기 전 상상해요. 평창 올림픽 시상대 맨 꼭대기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거는 제 모습을요. 그러면서 혼자 웃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잘 거라고 생각해도 실수하는데 못할 것부터 걱정하면 더 안될 게 뻔하죠." '스켈레톤' 하면 누구나 윤성빈을 떠올릴 수 있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도 이야기했다. "목표는 클수록 좋잖아요(웃음)."

☞스켈레톤(skeleton)

엎드린 자세로 썰매를 타고서 얼음 트랙을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겨울 스포츠로, 같은 썰매 종목인 봅슬레이·루지와 달리 남녀 각각 1인승으로 경기를 치르는 것이 특징이다. 출발선에 선 선수는 썰매 좌우 손잡이를 잡고 직선 코스로 약 30~40m를 달려 가속한 뒤 썰매 위에 엎드린 채 트랙을 활주해 내려간다. 활주할 때 속력은 시속 140㎞에 이른다. 1928년 동계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중단과 복귀를 반복하다 2002년부터 다시 정식 종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