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옥중에서 순국 직전 남긴 유언

경북 안동 천전동(내앞마을)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해요. 이 마을에서만 무려 20여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왔어요. 김동삼 선생도 내앞마을 출신 독립운동가예요. 본명은 '긍식'. 30대 초반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 뒤 '동삼'이란 이름을 사용했어요.

선생은 1878년 6월 23일 태어났어요. 청소년기, 안동 의병 최고지도자였던 김흥락 선생 밑에서 한학을 배우며 민족 문제에 눈뜨기 시작했고, 20대 중반이던 1905년 무렵엔 서울을 드나들며 신교육을 받았어요. 선생은 1907년 서른 살이 되던 해, 고향에 신식 학교인 '협동학교'를 세우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어요. 협동학교를 운영하며 민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젊은 지식인을 키우는 한편, 항일 비밀 결사 단체인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했어요.

'더 이상은 국내에서 인재를 양성하기 어렵겠어.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키워야지!' 1910년 8월 한일병합조약(일제가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뺏기 위해 맺은 조약)으로 나라가 망하자, 선생은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가족과 친척 등 집안 사람들을 포함해 마을 주민 150명을 만주로 이주시키기 위한 대규모 망명 계획을 세우지요.

선생은 집을 팔고, 논과 밭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해 12월 말, 안동 사람들을 이끌고 만주로 떠납니다. 추풍령까지는 걸어갔고, 거기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로 갔어요. 신의주에서 걸어 압록강을 건너고 만주에서는 수레를 타고 이동했어요. 멀고도 험한 망명길이었죠.

선생은 1911년 1월 남만주 유하현 삼원포에 도착했어요. 이곳에서 독립운동단체인 '경학사'와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학교'를 설립했고, 1914년엔 '백서농장'을 건립했어요. 백서농장은 백두산 서쪽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았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겉으로는 '농장'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군대'였어요. 백서농장은 이후 독립군 부대인 '서로군정서'로 발전해요. 선생은 서로군정서의 참모장에 취임해 독립군을 지휘했어요. 서로군정서는 1920년 만주에서 벌어진 '청산리 전투'에서 대한독립단, 북로군정서 등 우리나라의 독립군과 똘똘 뭉쳐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는 성과를 냅니다.

1923년 1월부터 5월까지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조직 개편을 논의하기 위한 '국민대표회의'가 열렸어요. 국내외 120여 개 독립운동 단체 대표들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상해로 모여들었어요. 한국 독립운동 역사상 가장 많은 대표자가 집결한 회의였어요. 이 회의에서 김동삼 선생은 당당히 '의장'에 선출됐어요. 부의장은 안창호와 윤해가 맡았지요. 당시 독립운동계에서 선생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국민대표회의는 단체 간 의견 충돌로 63일 만에 결렬됐어요. "작게 분산된 독립군 조직을 통합하고, 이념에 따라 나뉜 독립운동 단체들을 하나로 묶어야 해!" 선생은 독립운동계의 통합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어요. 독립군 단체 위에 하나의 지도 정당을 만들어 좌우 세력을 통합하자는 '유일당 운동'에 힘을 기울입니다.

일본군의 만주 침공 직후 1931년, 선생은 일제 경찰에 체포됩니다. 사돈인 이원일 등과 항일 공작을 추진하기 위해 하얼빈에 숨어들었다가 붙잡힌 것이지요. 선생은 모진 고문을 받으며 고생하다 국내로 압송됐고, 평양지방법원에서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습니다. 평양감옥에서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옮겨진 선생은 1937년 4월 13일, 60세 나이로 옥중에서 순국합니다. 30여년간 민족의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며 이념과 지역 차이를 넘어 모든 독립운동가에게 존경받았던 김동삼 선생은 이렇게 세상을 떠납니다.

선생의 장례는 평소 그를 따르던 만해 한용운이 직접 치렀어요.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은 자신이 머물던 성북동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른 뒤, 선생의 유언대로 화장해 유해를 한강에 뿌렸어요. 한용운이 일생에 눈물을 흘린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바로 김동삼 선생의 장례식이었다고 해요.

사진·자료 제공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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