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제 침략자를 놀라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킬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무력적인 응징이다.”

1920년 8월 3일 밤 9시 30분. 평양 시내에 폭음이 울려 퍼졌어요. 삼엄한 경계를 뚫고 평남도청 등 일제 통치기관에 폭탄을 던진 우리나라의 독립투사들. 이 중에는 배 속에 아기를 가진 임신부도 포함돼 있었어요. 바로 안경신 선생이에요.

안경신(1888~?) 선생은 평안남도 출신이에요.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 2년을 수료하고 고향에서 지내다가 1919년 평양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어요. 평양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3·1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해요. 서울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 시작한 오후 1시에 만세운동을 벌였다고 해요. 선생은 3·1운동에 가담한 죄로 체포돼 29일간 옥살이를 했어요.

3·1만세운동 직후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됐어요. 안경신 선생은 임시정부와 연결된 국내 조직인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아 전달했어요. 1920년 10월 대한애국부인회가 일본 경찰에 발각돼 활동이 어려워지자 선생은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으로 피신해요. '외교적인 노력으로는 독립이 불가능해. 무력적인 응징만이 독립을 앞당길 수 있어!' 선생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이런 생각을 동지들에게 얘기하곤 했어요.

1920년 임시정부는 7~8월 중 미국의원 시찰단이 한반도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들은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세계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 국내 '폭탄 거사'를 계획합니다. 안경신 선생은 여성의 몸으로 누구보다 과감하게 거사에 뛰어들었어요. 장덕진 등 동지들과 함께 평양 시내 일제 통치기관에 폭탄을 터뜨리기 위해 국내로 잠입합니다.

8월 3일 밤, 이들은 조를 나눠 거사를 단행했어요. 가장 먼저 폭발음이 들린 곳은 평남도청 신축건물(평남경찰부) 쪽. 이 폭발로 건물 담장이 무너지고 유리창이 깨졌으며 일본 경찰 2명이 사망했어요. 안경신 선생은 같은 시각 평양경찰서 앞에 있었어요. 그런데 빗물 때문에 도화선에 불이 붙지 않아 폭탄이 불발됐어요. 참외밭으로 피신해 하룻밤을 보낸 선생은 이튿날 동료에게 폭탄 하나를 건네받고 다시 기회를 노렸지만, 단속이 심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어요.

'미의원단 사건'으로 불리는 이 폭탄 의거 당시 안경신 선생은 임신부였어요. 선생은 이듬해 3월 20일, 갓난아기와 함께 경찰에 검거됐어요. 아기를 안고 재판장에 나타난 선생은 1심에서 사형을, 2심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어요. "조선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여 잘살겠다고 하는 것이 무슨 죄냐!" 선생은 법정에서 재판장을 향해 이렇게 꾸짖었다고 해요.

1927년 12월, 형기를 몇 달 남겨놓고 가석방된 선생은 평양에 있는 오빠의 집으로 갔어요. 그러나 7년 만에 만난 아들은 어찌 된 일인지 앞을 못 보는 장애를 안고 있었어요. 동지였던 장덕진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 들은 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독립 투쟁가가 많이 있고 여성 투쟁가도 수없이 있다. 그러나 안경신같이 시종일관 무력적 투쟁에 앞장서서 강렬한 폭음과 함께 살고 죽겠다는 야말찬 친구는 처음 보았다." 대한애국부인회 동지였던 최매지는 안경신 선생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왜소한 체구에 강인한 투쟁 정신을 품고 있던 안경신 선생. 그는 조국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진 진정한 '여성항일투사'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