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 방배로의 한 연습실. 제 얼굴만 한 리본을 머리에 달고 응원 복장을 한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헛둘헛둘하며 간단하게 몸 풀던 이들은 서로 눈 맞추더니, 갑자기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몇몇 언니들이 키 작은 동생을 가운데에 놓고 밖에서 안 보이게 둘러쌌다. 비슷한 행동을 취한 그룹은 둘이나 더 있었다. 전열 정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짧은 머리 소년들이 불쑥 나타나 '일 꾸미기'에 동참했다. 몇몇 소녀들도 함께 나와 양발을 어깨너비만큼 벌리고서 준비했다.

"업 앤드 다운! 다운 앤드 업!"

모두가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치자, 모습을 꽁꽁 감추고 있던 키 작은 동생들이 언니들 머리 위로 '툭' 튀어나왔다. 백만불짜리 미소도 함께 가지고 등장했다. 동시에 그룹 바깥에 있던 소년·소녀들도 양팔을 힘차게 벌리고 '일(一)자'로 다리 찢으며 이들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받쳐줬다. 저들끼리 쑥덕쑥덕한 뒤 10여 초 만에 만든 한 편의 '작품'이었다.

이들은 어린이 치어리딩팀 '팝콘'. 만 6~12세 어린이 20여 명으로 구성된 '꼬마 응원단'이다. 팀명은 '팝콘처럼 톡톡 튀는 매력을 지닌 어린이들'이란 뜻이다.

팝콘은 반짝거리는 옷 입고 수술 흔들며 군무(群舞)하는 일반적인 액션치어리딩 팀과는 다르다. 쉴 새 없이 하늘로 솟구치고 텀블링하며 곡예 펼치는 스턴트치어리딩 팀이다. 팝콘을 지도하는 김희경 서울치어아카데미 원장은 "액션치어리딩에 고난도 스턴트 기술을 접목해, 좀 더 화려하고 역동적인 응원을 보여주는 게 바로 스턴트치어리딩"이라고 설명했다.

팀 역사는 제법 오래됐다. 2009년 꾸려졌으니, 6년 좀 넘었다. 팝콘도 결성 당시부터 줄곧 액션치어리딩을 했다. 하지만 2년 전 돌연 종목을 바꿨다. "그즈음 '같은 치어리딩 종목이니 한번 도전해볼까'하며 경험 삼아 아이들에게 가르쳤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액션치어리딩할 때보다 더 즐거워하더라고요. 이후 계속 진행하다 보니 점점 더 흥미를 보였고, (스턴트치어리딩) 하겠다는 어린이들도 점점 늘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김희경 원장)

종목 전환기 때부터 활동했던 현(現) 팝콘 단장 김나홍(서울 등원초 5) 양은 "처음엔 어렵고 무서웠지만, 하다 보니 재밌었고 점점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팀원 모두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특히 오랜 연습 끝에 기술을 완벽하게 소화했을 때에는 성취감이 다들 상당했다. 그게 모두가 스턴트치어리딩에 푹 빠지게 된 이유인 것 같다"고 했다.

팀원들은 매주 화·목요일 두 차례 모여 세 시간씩 치어리딩 연습을 한다. 스턴트치어리딩 동작은 매번 기초부터 응용 동작까지 반복해 몸에 익힌다. 부상 방지를 위해서다. 댄스·발레도 함께 배운다. 김희경 원장은 "스턴트치어리딩을 하려면 유연성·리듬감·균형감 등은 필수다. 이러한 능력을 꾸준히 키워야 다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한 번씩 다친다. 위험한 동작이 많아 툭하면 부딪히고 넘어지고 까진다. 긁히고 피 보는 건 기본. 심할 때엔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다. "대회 앞두고 집에서 언니들이랑 하늘 위로 솟구치는 엘리베이터 동작 연습하다가 앞으로 고꾸라진 적이 있어요. 입술 주변이 찢어져서 피가 철철 났죠. 엄마 말로는 수십 바늘 꿰맸대요. 언니들은 미안하다고 울고…. 잘 해보려 하다가 그런 거니까, 후회는 안 해요. 상처도 남지 않아서 다행이고요. 그렇게 크게 다쳤는데도 하는 거 보면 재밌긴 재밌나 봐요. 하하."(심혜빈 양·서울 돈암초 3)

피땀 흘리며 연습한 덕분에 값진 성과도 거뒀다. 팝콘은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적인 치어리딩 대회 '2015 잼 페스트(JAM FEST)'에서 주니어 그룹 부문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3관왕에 올랐다. 한서희(서울 고덕초 6) 양은 "쟁쟁한 팀들이 워낙 많아서, 수상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팀 이름이 불렸다.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고 했다.

실력을 갖추니, 이젠 부르는 데도 많다. 특히 프로 스포츠구단에서 많이 찾는다. 팝콘은 올 시즌 프로농구 SK 나이츠의 어린이 치어리더로 활약한다.

이들은 "스턴트치어리딩을 경험하면서 몸과 마음이 한 뼘 더 자랐다"고 했다. 안현화(서울 구산초 1) 양은 "엄마와 떨어지면 사람들과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낯가림이 심했는데, 스턴트치어리딩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덕분에 친화력이 아주 좋아졌다"고 했다. 이진욱(경기 남양주 신촌초 4) 군과 전예진(인천 화전초 1) 양은 "체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김나홍 양은 "성장기엔 점프를 많이 하면 키가 큰다고 하던데, 스턴트치어리딩에 점프 동작이 많아서인지 몰라도 2년 새 거의 20㎝ 가까이 큰 것 같다"며 웃었다. "또래 친구들도 장점 많은 스턴트치어리딩에 도전해봤으면 해요. 굳이 스턴트치어리딩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고요. 제가 해봐서 아는데, 도전하면 정말 행복해져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