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는 말이 있다. 마음을 비울 때 오히려 원하는 것을 얻는 경우가 많다. 욕심을 버리는 것. 지난 18~19일 열린 제9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국초등학생골프대회에서 여자 고학년부 1위에 오른 정주리(서울 고명초 6) 양의 우승 비결이다.

◇한참 뒤지고 있어도 "장갑 벗을 때까지 해봐야죠!"

이번 대회는 국내 유일의 장관배 골프대회로, 주니어 국가상비군 점수까지 걸린 중요한 경기였다. 정주리 양은 작년과 재작년 이 대회에서 연달아 2등을 했다. "기분 좋았어요." 우승 소감을 물으니 눈을 가늘게 뜨며 씩 웃었다.

"시합 나가면 '이겨야지' '일등해야지' 하는 생각은 안 해요. 5등 안에만 들어도 만족해요. 결과보다는 시합 자체를 즐기는 편이라서 라이벌이 잘 칠수록 의욕이 생기고 힘이 솟아요. 서로 치고받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게 재밌잖아요(웃음)."

욕심은 없는데 '뚝심'은 있다. 그 뚝심이 때론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난달 열린 제11회 한국초등학교골프연맹회장배 전국학생골프대회. 정주리 양은 첫날 경기를 망친 상태에서 이튿날 6언더를 몰아쳐 공동 1위에 올랐고 연장전까지 갔다. 결과는 2위. 정주리 양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경기 중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며 "(골프) 장갑 벗을 때까지 해본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손녀의 '매니저' 역할은 맡고 있는 외할아버지는 "주리가 욕심을 안 부려서 답답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전에는 '꿈을 크게 가지라'며 잔소리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주리의 장점인가 싶어요. 너무 '잘해야지' 하다 보면 더 안 되잖아요. 욕심이 없는 대신 멘탈이 강해요."

◇"강아지 사준다는 말에 열심히 쳤어요"

정주리 양은 네자매 중 둘째다. 어릴 적 유난히 언니를 따랐다. 언니가 먼저 골프를 배웠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따라서 골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처음엔 재미없었어요. 빨리 치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드라이버를 치면 100m도 안 나왔는데, 부모님이 100m 치면 강아지를 사주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이를 악물고 연습해서 100m를 쳤는데 강아지는 안 사주셨어요. 그런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드라이버 거리를 조금씩 늘려가면서 골프에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실력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한 건 3학년 말 김광담 프로에게 수업을 받으면서부터다. 팔 힘이 아닌 몸의 회전을 이용해 공을 때리는 방법을 배웠다. 그 덕에 현재 드라이버 거리가 230m까지 나온다. 또래 여학생 중에 최고 수준이다. 5학년 가을부터 가르침을 받고 있는 김영수 프로에겐 '정교함'을 전수받고 있다. 정주리 양은 "파워에 비해 정교함이 부족했는데 선생님 덕분에 낮게, 높게 조절해가면서 치는 기술을 예전보다 잘 구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습량은 많은 편이 아니다. 학교에서 4교시까지 마치고 점심도 먹고 연습장으로 향한다. 골프장에 도착하면 2시. 그때부터 7시까지 다섯 시간 정도 공을 친다. "웬만하면 학교는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골프를 잘하려면 공부도 게을리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수학적 계산이라든지, 머리 쓰는 게 중요하거든요."

◇"박인비 선수의 퍼팅과 멘탈 닮고 싶어"

정주리 양은 지난해 골프 주니어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혀 태극마크를 달았다. 제주도지사배 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2위(4월), 전국소년체전 2위(5월), 녹색드림배 전국초등학생골프대회 1위(7월), 전남도지사배 전국초등학생골프대회 1위(7월), 덕신하우징배 전국남녀 꿈나무골프선수권 1위(5월) 등 올해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저는 여름에 강한가 봐요. 다른 사람에 비해 땀도 안 흘리고, 날이 더워질수록 성적도 더 잘 나와요. 겨울에는 추우니까 몸이 굳어서 힘들어요. 부상도 주로 겨울에 당했어요. 4학년 겨울엔 허리가 아파서 고생했고요. 올해 초엔 손목 통증이 와서 연습을 못했어요. 진통제 먹고 대회에 나가기도 했어요."

그린 위에서 정주리 양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합에서 이겨도 그 흔한 세레모니 한번 없다. "한번은 '만약에 우승하면 손을 번쩍 들어올려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손이 안 올라가더라고요(웃음)." '돌부처' '평온의 여왕'이란 별명이 붙은 세계 랭킹 1위 박인비 선수가 떠오른다. 비슷한 사람끼리 끌리는 걸까. "박인비 선수의 뛰어난 퍼팅과 멘탈을 닮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