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 사이에서 박채은(서울 신현초 6) 양은 '운동 중독'으로 통한다. 누구보다 훈련을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쉬는 날에도 혼자 나와 연습한다. 아무리 아파도 운동을 거른 적이 없다. 그 덕분인지 채은이는 초등 스피드스케이팅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500m와 1000m 기록이 중3 언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지난 8일 막을 내린 '백곰배 전국 초등학교 스피드스케이팅 대회'에선 2관왕(1000·2000m)에 올랐다. 오늘(20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2016 종별 종합 스피드 대회' 초등 추천 선수 명단엔 이름 옆에 숫자 1이 적혔다. '제2의 이상화'란 수식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즐기면서 실력도 쑥쑥…"스케이트가 우주만큼 좋아요!"

지난 15일 오후 태릉 국제빙상장에서 만난 채은이는 생각보다 키가 훨씬 컸다. 163㎝에 45㎏이라고 했다. "좀 긴 편이라 발을 한 번 밀면 쭉 나가요(웃음). 하지만 가장 큰 비결은 '훈련량'이에요. 지난여름에 진짜 힘들었어요. 새벽 5시 30분에 나와 운동하고, 학교 가고, 수업 후 다시 빙상장에 오고…. 그래도 올 시즌 성적이 좋아 뿌듯해요. 참, 저번에 길리 인터뷰하셨다면서요?"

소년조선일보 2015년 12월 29일 자 1면에 소개된 쇼트트랙 유망주 김길리(서울 성내초 5) 양과 아는 사이라고 했다. 4학년 무렵 함께 운동한 적이 있다고 했다. "틈틈이 쇼트트랙을 연습하거든요. 지구력을 키울 수 있어 스피드스케이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채은이가 스케이트화를 신은 건 일곱 살 때다. 먼저 스피드스케이팅에 몸담은 오빠의 영향이 컸다. "엄마와 오빠 보러 빙상장에 자주 놀러 갔어요. 스케이트가 재밌어 보여 엄마한테 '나도 태워 달라'며 졸랐죠. 맨 처음 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미끄러운 얼음판 위에 날 두 개로 버티고 서 있는 게 무척 신기했죠."

배우다 보니 흥미가 더욱 커졌다. 속도가 붙으니 스릴도 두 배였다. "땅에서 달릴 때보다 훨씬 짜릿하더라고요. 지금은 스케이트 없인 못살아요. 너무 재밌어서요. 어느 정도냐고요? 우주만큼요!"

즐기는 만큼 실력도 쑥쑥 늘었다. 시작과 동시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전국 대회를 제패했다. 지금까지 우승하지 못한 건 단 세 번에 불과하다. "시상대 꼭대기가 아닌, 두 번째 층에 있으면 기분이 묘해요. 속상하기도 하고, 더 잘 타야겠단 생각도 들고요. 승부욕이 강해서인가 봐요."

◇'제2의 이상화'로 올림픽 무대 활약을 꿈꾸다

이 '1등 소녀'도 매번 시합 때마다 긴장을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출발선 위에 서면 떨리는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자신감 덕분이다.

"주변에서 '너는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느냐'고 해요. '잘 타는 언니와 붙어도 내가 이긴다'고 말하고 다니거든요(웃음). 제가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이상화 언니가 자신감이 중요하다 했기 때문이에요. 대회 전에 그 마음을 되새기죠."

특히 이번 시즌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500m 41초46, 1000m 1분23초71이란 기념비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는 중 3 언니들 수준. 이준수(41) 코치는 "채은이는 이미 이상화의 초등학교 기록을 뛰어넘었다. 이상화와 김민선(이상 현 국가대표)의 계보를 잇는 유망주다. 집중력과 순발력이 탁월하다"고 칭찬했다.

'운동 중독'답게 채은이의 하루는 온통 스케이트다. 적게는 4시간, 많게는 8시간가량 훈련에 임한다. 힘들 법도 한데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왠지 허전하고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했다. 매일 태릉 빙상장에 있다 보니 국가대표 언니·오빠들도 자주 만난다.

이날도 박승희·모태범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담금질에 한창이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채은이가 "평소 선수들 자세를 유심히 본다"며 "유튜브에서 월드컵 등 세계 대회 영상을 찾아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고 1 때쯤 태극마크를 달고 싶어요. 올림픽에 나가 500m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꿈이죠. 1000m까지 2관왕이 욕심나기도 해요. 하지만 성적을 떠나 스피드스케이팅은 정말 매력적인 스포츠예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커요."

인터뷰를 마치고 바삐 훈련에 복귀하는 채은이를 향해 오늘부터 시작인 종별 종합 대회 목표를 물었다. "당연히 전관왕이죠. 전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다음엔 태릉 선수촌에서 뵐게요." 그러더니 빙상장으로 힘차게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