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식이섬유에 대한 오해와 진실
식이섬유. 사람의 소화효소로 분해하기 어려운 ‘난소화성 고분자 섬유 성분’으로, 주로 식물 세포의 세포벽 또는 식물 종자의 껍질 부위에 많이 분포된 영양소를 말한다. 한때 식이섬유는 변비 예방, 다이어트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관련 제품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어린이 약 60만명가량이 식이섬유를 과다 섭취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성장 장애·설사 등 건강상 손해를 보고 있다는 한국영양학회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간 우리가 무엇을 잘 못 알고 있었는지, 식이섬유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빈혈·변비·설사…식이섬유 과다 섭취하면 '독'
식이섬유의 효능은 달라붙는 힘, 즉 흡착력에서 나온다. 물·지방·콜레스테롤에 달라붙어 체외로 배설시킴으로써 다이어트를 한 것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문제는 몸에 필요한 영양소도 배출시킨다는 점이다. 김영성 신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식이섬유의 흡착력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아 철분·아연·칼슘 등 필수 미네랄과 지용성 비타민을 체외로 배출시킬 수 있다"며 "식이섬유를 지나치게 많이 먹을 경우 빈혈과 골다공증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밥을 두 끼 이상 제대로 챙겨 먹는 사람일 경우, 식이섬유가 풍부한 과일을 통째로 갈아 먹거나 식이섬유 음료를 추가로 섭취하면 몸에 필요한 영양소도 같이 빠져나간다. 특히 영유아와 어린이는 칼슘과 미네랄 흡수가 안 돼 키 성장이 더뎌지는 부작용을 불러온다. 식이섬유 섭취로 배가 불러 다른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성인이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면 변의 양이나 부피가 늘어나 변비 예방에 유효하지만 어린이들은 다르다.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어린이가 식이섬유를 과다 섭취할 경우 경련성 변비나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불러올 수 있다"며 "실제로 이런 이유로 병원을 찾는 어린이가 많다"고 설명했다.
"적정량의 식이섬유는 장에서 좋은 작용을 하고 배출되지만, 그 이상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식이섬유가 과다하면 가스를 생성해 장 근육 운동에 이상을 일으키죠. 장내 미생물에 의해 발효가 일어나 가스가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에요. 보리밥 먹으면 방귀를 잘 뀌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근육 경련이 일어나듯 장이 경련을 일으켜 설사가 생기거나 반대로 장이 마비돼 변비도 만듭니다. 장이 덜 성숙한 유아나 어린이는 특히 주의해야 해요."
김영성 교수도 "식이섬유가 어린이 변비 예방에 효과적인지를 추적한 연구는 몇 편 안되는데다가 결론이 정반대인 논문도 있다"며 "특히 장에서 물을 흡수하는 능력이 없는 불용성 식이섬유를 충분한 물 없이 섭취하면 변이 딱딱해져 변비나 치질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식이섬유는 크게 물에 녹는 수용성 식이섬유와 녹지 않는 불용성 식이섬유로 나뉘는데 수용성 식이섬유는 과일에, 불용성 식이섬유는 통곡식과 채소에 풍부하다.
김지연 서울과학기술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잡곡밥, 채소, 과일 위주로 음식을 섭취했는데도 변비가 생겼다는 사람이 꽤 있는데, 이는 대개 식이섬유가 원인"이라며 "하루에 물을 마실 수 있는 양은 한정돼 있지만, 식이섬유를 그보다 많이 먹어서 변이 딱딱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식이섬유 섭취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지는 아이는 물론 성인에게도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관련 연구결과가 부족한데다 결론도 엇갈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이어트를 위해서 식이섬유를 지나치게 먹어서는 안 된다. 김지연 교수는 "식이섬유 섭취가 대장암 예방을 도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대장암 발생위험을 낮춰준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식이섬유의 좋은 점만 취하고 부작용을 피하려면 적정량을 먹는 게 중요하다. 하루 필요한 식이섬유량은 성인 기준 약 25g, 어린이 기준 15~20g이다〈표 참조〉. 이는 일반적으로 한두끼 정도를 잡곡밥과 나물 반찬으로 먹는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양이다. 따라서 세끼를 한식으로 잘 차려 먹는 유아나 어린이들은 충분량 이상을 섭취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과일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김영성 교수는 "사과 하나에는 일일 섭취량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식이섬유가 들어가 있다"며 "비타민 섭취를 위해서 꼭 과일을 먹어야 한다면 과육과 껍질을 통째로 갈아 먹기보단 즙만 짜서 먹는 게 식이섬유 과다 섭취를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간 음료나 어린이 건강기능제품 등도 조심해야 한다. 식이섬유 음료라 불리는 제품의 경우, 100㎖당 2.5~3g의 식이섬유가 들어가 있다.
흔히 고지혈증이나 비만이 있으면 식이섬유를 의도적으로 많이 섭취하곤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채소 위주로 먹는 우리 국민은 통상적인 세끼 음식 안에 식이섬유가 충분히 들어가 있으므로 정상적인 식사를 했다면 식이섬유 부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만약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으로 세끼를 때웠다면 식이섬유 음료보단 곶감을 하루 한개씩 먹는 것을 추천한다. 식이섬유 함유량이 개당 6g으로 다른 식품에 비해 월등할 뿐 아니라 칼로리(개당 70~90㎉)도 그리 높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