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은 전혀 예상 못 했어요. 동생들이 응원와 준 덕분인가 봐요. 막내 대박이(이시안 군)도 결승전 때 "누나 파이팅!"을 열심히 외치더라고요. 발음은 정확하지 않았지만요(웃음). 엄마가 선물해 주신 행운의 팔찌도 효과가 있었나 봐요. 경기가 잘 풀렸어요."

지난 24일 오후 인천 송도국제테니스장. 최근 제46회 회장배 전국여자테니스대회에서 3·4학년(10세)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이재아(CMIS 캐나다 국제학교 3) 양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선 연습벌레 흔적이 묻어났다.

"언니들 이기는 게 올해 '도전 과제'이긴 했어요. 매일 짧게는 두 시간에서 많게는 네 시간씩 열심히 훈련한 보람이 있네요. 인터뷰는 처음인데요. 아빠는 "어…." 하고 뜸들인 뒤 말씀하시곤 하던데 전 잘할 자신 있어요! 헤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운동 신경, 테니스로 진가 발휘

초등 테니스 유망주 재아는 축구선수 이동국(37·전북 현대)씨 딸로도 널리 알려진 어린이다. "회장배 대회가 끝나자마자 성남 FC와 전북 현대 경기가 열린 탄천종합운동장으로 달려갔어요. 아빠한테 자랑하고 싶었거든요. 아빠가 "정말 잘했어. 거봐, 할 수 있잖아"라고 칭찬해주셨어요."

종목은 다르지만 아빠는 최고의 멘토다. 시합 전 긴장을 푸는 방법은 물론, 운동선수가 지녀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 등에 대해 늘 조언해준다. 재아는 이를 노트에 적고, 힘들 때마다 펴본다.

"아빠가 상대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자신감 있게 대하면 이길 수 있다고 하셨어요. 또 시합 전 몸을 충분히 풀어주면 떨리지 않을 거래요. 져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며 용기를 북돋아주시죠. 아, 근데 아빠가 경기장에 오시면 유독 긴장돼요. 왠지 더 잘하고 싶어서 그런가 봐요."

아버지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재아는 어릴 적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테니스를 시작한 건 7살 때다. 아버지와 친한 친구인 신정훈(38) 코치가 운영하는 테니스교실에 놀러 갔다가 처음 라켓을 잡았다. 그때 기분이 좋아지면서 아주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온몸에 에너지가 흐르면서 파워가 충전되는 느낌이었어요. 골프·수영·발레 다 배워봤지만, 테니스만큼 재밌지는 않았어요. 처음으로 선수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지금도 공이 잘 맞을 땐 밤새도록 치고 싶을 만큼 테니스가 좋아요. 제게 꼭 맞는 운동이죠. 축구보다 훨씬 더 짜릿하지 않나요(웃음)?"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를 꿈꾸며 한 걸음씩 나아갈래요!"

테니스를 향한 딸의 열정에 부모는 전북 전주에서 신 코치가 있는 인천으로 집을 옮겼다. 테니스장을 놀이터처럼 수시로 오가던 재아는 전국대회 새싹(1~3학년)부에서 수차례 정상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선 한 학년 위 언니들과 맞붙는 10세부에서까지 1등을 차지했다.

신정훈 코치는 "재아는 테니스 선수에게 필요한 삼박자 머리·힘·키를 다 갖췄다.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도 탁월하다. 현 초등학생 선수 중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했다.

승부욕도 강한 편이다. 지면 이길 때까지 상대방과 계속 시합을 하고 싶단 마음을 가질 정도다. 가족과 함께 출연하고 있는 KBS2 TV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아버지와 테니스 대결을 펼쳤다가 패하자 눈물을 펑펑 쏟는 장면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재대결을 했어요. 제가 먼저 다시 붙어보자고 제안했죠. 그때 져서 억울했거든요. 이번엔 15대5로 이겼어요. TV 출연이요? 신기하죠. 친구들 사이에서 설아·수아·대박이가 엄청 인기예요. 다들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대요."

훈련하지 않을 때도 재아의 관심은 온통 테니스에 쏠려 있다. 유튜브나 TV로 각종 테니스 대회 영상을 찾아본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세계 랭킹 1위 세리나 윌리엄스(35·미국)다. 그가 포핸드나 백핸드를 어떻게 구사하고, 하루 운동량은 얼마나 되는지 등 A부터 Z까지 꿰차고 있다.

"언뜻 보기에 윌리엄스 선수는 몸이 무거워 보이잖아요. 그런데 다리가 무척 빨라요. 이 점과 더불어 힘과 근육을 닮고 싶어요. 요즘 전 체력 관리에 신경 쓰고 있어요.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양을 줄이고 있죠. 혼자서 고기 2인분에 밥 2그릇 뚝딱이거든요(웃음)."

재아는 자신의 이름 앞에 '이동국 딸' 대신 '테니스 여왕'이란 수식어가 붙는 게 꿈이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라켓을 손에 쥐고 코트에 선다.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무대에 선 장면을 그리면서 말이다. "세계 랭킹 10위 안에 이재아란 이름이 적히는 날까지 한 걸음씩 나아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