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합주 고을에 이거인이란 사람이 살았어. 그가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오고 있었어. 가만 보니 그 강아지는 눈이 세 개나 있었어. 이거인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 강아지를 데려다 길렀지.

그런데 이 강아지는 하루에 한 번 낮에만 밥을 먹었어. 그리고 주인이 출입할 때에는 꼭 몇 리씩 따라와 주인을 배웅하거나 마중했어. 그러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그만 죽고 말았지. 이거인은 정든 개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려니 슬퍼져서 사람이 죽었을 때처럼 관에 넣어 묻어 주고 제사도 지내 주었어.

그런데 2년 뒤 이거인은 병을 앓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죽었어. 혼이 나간 채로 불교에서 말하는 저승이란 곳으로 들어갔는데, 저승문 안에 있는 집에서 공복을 잘 갖춰 입은 관원이 내려와 다정하게 그를 맞이하는 거야.

"우리 주인께서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평소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얼굴에 눈이 셋이나 달린 것이 눈에 들어왔어. 눈 셋 달린 관원은 계속해서 말했어.

"제가 옛날에 죄를 지어 인간 세상에서 개로 태어났습니다. 그때 다행히 주인의 은혜를 입어 3년이 지난 뒤에 이 관직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거인은 그에게 물었어.

"나는 잘난 게 없는 사람인데, 염라대왕 앞에 가서 뭐라고 말하면 좋겠는가?"

"그저 인간 세상에 있을 적에 팔만대장경을 새기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만 말씀하십시오."

이거인은 염라대왕 앞에서 그가 알려 준 대로 말했어. 그러자 염라대왕이 매우 기특하게 여기는 거야. 그리고 죽은 사람 이름을 기록해 둔 장부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고 풀어 주었지.

눈 셋 달린 관원은 작별하며 이거인에게 당부했어.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시거든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일에 시주(절이나 스님에게 돈이나 물건을 베푸는 것)한 사람들 이름을 적어 잘 간직해 두십시오. 그러면 훗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애장왕(신라의 40대 왕)의 두 공주가 함께 천연두를 앓았는데 그중 한 공주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거야.

"팔만대장경을 만들려고 정성을 모은 사람들 이름이 적힌 책자를 구할 수만 있다면 우리 병이 나을 텐데…."

왕이 공주의 말을 듣고 그 책자를 수소문했어. 그러자 합주의 원님이 이 소식을 듣고 이거인을 보냈지. 이거인이 관청에서 내준 말을 타고 가서 공주를 만나자, 공주는 눈 셋 달린 사람의 말투로 안부를 물었어.

"작별한 뒤로 평안하십니까?"

그리고 왕을 향해 말했어.

"팔만대장경은 저승에서도 귀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염라대왕께서 이 사람을 풀어 주어 세상에 다시 보낸 것은 이 일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왕께서는 이 사람을 도와 팔만대장경 새기는 일을 이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거인에게 작별 인사를 했어.

"이제부터는 영원히 못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공주의 병이 나았어.

왕은 나라 안 기술자를 총동원해서 팔만대장경을 간행하게 했대. 그런데 신라 애장왕 때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확실한 것은 아니야. 현재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이거든.

>> 생각해봅시다
조선 후기 이덕무(1741~1793)가 지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평소 약한 생명을 측은하게 여겼던 이거인이 죽어서 저승에 갔다가 이승에서 도움을 준 눈 셋 달린 개의 도움을 받아 다시 살아 돌아온다는 내용이지요. 우리 주변에도 눈 셋 달린 개처럼 못나 보이고, 약해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이들을 언제, 어디서, 어떤 사이로 다시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이거인처럼 우리도 지금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겨야겠지요?

공동기획 | 소년조선일보·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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