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열전] 계백, 김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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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19 09:20

계백(?~660)

젊은 시절 신라를 공격해 많은 성을 빼앗았던 의자왕은 나이가 들면서 정치를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틈을 타 신라는 당과 손잡고 백제를 공격했다. 660년에 당은 수군을, 신라의 김유신은 5만명의 육군을 동원해 공격했다. 의자왕은 당시 가장 용맹한 장수였던 계백에게 신라를 막도록 했다. 나라가 멸망하면 백성 모두 노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계백은 자신의 가족들을 모두 죽인 다음, 50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갔다. 그는 백제의 운명을 걸고 최선을 다해 싸웠다.

백제군은 신라군을 맞아 황산벌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이때 백제가 네 번의 전투에서 모두 이기자 신라군의 사기가 꺾였다. 그러자 화랑 반굴과 관창이 목숨을 바쳐 백제군으로 진격했다. 어린 화랑들을 필두로 사기가 오른 신라군은 다시 백제를 맹공격해 전쟁에서 승리했다. 계백은 무너져 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사람으로 훗날 높이 평가됐다.


	역사인물열전

김인문(629~694)

어려서부터 학문을 즐기고 다재다능했던 김인문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둘째 아들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웠고, 특히 당과 신라 사이에서 훌륭한 외교관 역할을 했다.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당과 친하게 지냈던 신라는 관리를 당으로 보내 당 황제의 곁에서 보좌하게 했다. 이를 숙위라고 하는데, 김인문은 숙위로서 당에 머물며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하는 데 외교력을 발휘했다. 통일 후에는 신라와 당의 분쟁 조정 과정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백제가 멸망할 때 당의 장군으로 싸웠으며 고구려가 멸망할 적에는 신라군 사령관으로 군인들을 이끌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 신라와 당이 싸우게 됐을 때 당은 신라왕을 폐위하고 김인문을 신라의 왕으로 삼는다고 할 정도로 김인문을 중하게 여겼다. 결국 신라의 왕이 당에 사죄하고 두 나라는 싸움을 멈췄는데, 김인문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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