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신이 조선에 왔다가 우연히 길에서 기품이 철철 넘치는 한 남자를 만났다. 조선말을 할 줄 몰랐던 사신은 손짓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먼저 손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그러자 남자는 손가락을 네모지게 만들어 화답했다. 사신은 남자의 반응에 감탄하며 이번에는 세 손가락을 내밀었다. 남자는 다섯 손가락을 모두 내밀었다. 사신은 또 한 번 놀라며 옷자락을 들어 보였다. 이 모습을 본 남자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수수께끼 같은 대화가 끝나고 둘은 헤어졌다. 사신은 자신을 마중나온 조선 관원에게 남자와 있었던 일을 전하며 껄껄 웃었다. "조선인은 예절이 바르고 머리가 좋다더니 빈말이 아니었소." 사신은 자신이 '하늘이 둥글다'고 하자 남자는 '땅은 네모지다'고 응수했다고 했다.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의 3가지 도리를 말하자 남자가 의리·자애·우애·공경·효도 다섯 가지를 꼽았다고 했다. 옛날에는 옷자락을 드리우고 앉아 덕으로 천하를 다스렸다고 하자, 남자는 훗날엔 '말'로 천하를 다스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관원이 수소문 끝에 남자를 찾아 물었다. 남자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분이 동그란 절편이 먹고 싶다기에 나는 네모난 인절미가 먹고 싶다고 했고, 하루 세끼를 먹고 싶다기에 나는 다섯끼를 먹고 싶다고 했으며, 옷차림을 걱정하기에 나는 먹고사는 것이 걱정이라고 대꾸했을 뿐입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란 이럴 때 쓰는 말 아닐까?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 중국 사신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웃음거리로 조정 대신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조선 중기 문신 어우당 유몽인(1559~1623)이 지은 '어우야담(於于野談)'이다. 양반가 자제로 태어난 유몽인은 정승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당파 싸움에 환멸을 느껴 59세에 벼슬을 내려놨다. 그는 전국 산을 떠돌며 글을 썼는데, 이때 전해 들은 이야기를 모아 엮은 책이 어우야담이다. 한자로 적힌 케케묵은 책 속에 이런 '빵 터지는' 웃음이 들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우리 고전 속 흥미로운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풀어낸 고전도서 6종을 출간했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나는야, 이야기 먹는 도깨비'(박이담 글, 배성연 그림)로 새롭게 탄생했다. 괴짜 선비 '유몽인'과 이야기를 먹고 사는 '주머니 도깨비'가 함께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다.

'아하! 자연에서 찾은 비밀'(조경구 글, 김동성 그림)은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의 '관물편'에서 따온 이야기다. 이익은 벼슬을 하지 않아 평생을 가난하게 지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땅과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관물편은 그의 이런 삶 속에서 태어난 글. 파리, 개미, 앵두나무, 감나무 등 평범한 자연 속에 숨겨진 비범한 이치를 전한다.

조선 후기 문장가 도곡 이의현의 '유금강산기'를 재해석한 '궁금증 풍선과 떠나는 금강산 여행'(박은정 글, 장현정 그림), 이덕무와 박제가의 우정을 그린 '운명아, 덤벼라!'(강민경 글, 정경심 그림), 서울 지하철 1호선 주변의 역사 이야기를 옛 문헌에서 찾아 알려주는 '역사 속을 달리는 서울 지하철-1호선 여행'(김용인 글, 전기윤 그림)도 재밌다.

'암행어사를 따라간 복남이'(정혜원 글, 이경하 그림)에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암행어사가 등장한다. 신분이 발각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가짜 암행어사로 몰려 고생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1822년 조선 순조 때 평안남도에 암행어사로 파견된 박내겸이 직접 쓴 '서수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