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홍주에 최씨 성을 가진 아주 아리따운 여인이 살았어. 이 여인은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왔는데, 불행하게도 열여덟 살에 남편이 죽고 말았어. 남편이 죽은 뒤 집안에는 눈먼 시아버지와 최 여인만 남게 되었지.

최 여인은 죽어도 다시는 결혼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어. 그리고 물을 긷고 절구 찧는 일로 품팔이를 해가며 정성껏 시아버지를 모셨지. 외출할 일이 있을 때에도 시아버지 곁에 드실 음식을 죽 늘어놓고 어떤 음식이 어디에 있는지 설명해 드렸어. 시아버지가 손으로 더듬어서 드실 수 있도록 말이야. 이런 모습을 보고 이웃 사람들이 모두 효부라고 칭찬했지.

하지만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 자식 하나 없이 사는 최 여인을 바라보는 친정 부모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어. 그래서 딸의 뜻을 꺾어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려고 사람을 보내 거짓말을 했지. 친정어머니 병이 위중하다고 말이야. 최 여인은 이웃 사람들에게 시아버지 진지를 챙겨 드릴 것을 부탁했어. 그리고 부랴부랴 친정으로 달려갔지.

그런데 친정에 가 보니, 아프다던 친정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최 여인은 몹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친정아버지는 최 여인에게 말했어.

"네가 스무 살도 안 되어 의지할 데 없는 과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불쌍한 일이냐? 그래서 내가 널리 알아봐 좋은 신랑감을 골라 두었다. 내일 혼례를 치를 것이니, 그리 알아라."

"예, 아버지."

최 여인은 그리할 것처럼 대답했어.

그러자 친정 부모는 아주 기뻐했지. 하지만 최 여인은 한밤중이 될 때까지 기다렸어. 그러고는 몰래 집을 빠져나와 혼자 시댁을 향해 걸어갔어. 친정에서 시댁까지는 거리가 80리나 되었는데, 겨우 20리 정도 갔을 때 두 발이 모두 부르터 발을 떼기조차 어려워졌어. 그래도 계속해서 걸었지.

그런데 어느 고갯마루에 도착하자 큰 호랑이 한 마리가 길을 막고 엎드려 있는 거야. 더는 길을 갈 수 없게 되자 최 여인은 호랑이에게 말했어.

"너는 신령스러운 동물이니 내 말 좀 들어 봐라."

그러고는 자신이 왜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를 사실대로 얘기해줬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

"죽을 수만 있다면 죽고 싶은 심정이다. 나를 해칠 생각이거든 지금 즉시 나를 물어 죽여라."

최 여인은 곧장 호랑이 앞으로 다가갔어. 그랬더니 호랑이가 뒤로 물러나는 거야. 여러 번 이렇게 하더니만 갑자기 호랑이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어. 최 여인은 호랑이에게 말했어.

"연약한 몸으로 깊은 밤 혼자 길 가는 것이 불쌍해 보여 나를 태워 데려다 주려는 것이냐?"

그 말을 들은 호랑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꼬리를 흔들었어. 최 여인은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 목을 끌어안았어. 그러자 호랑이는 쏜살같이 달렸어. 잠시 뒤에 보니 벌써 시댁 문 앞에 도착해 있는 거야. 최 여인은 호랑이 등에서 내려 호랑이에게 말했어.

"배고프지? 먹을 것을 줄게."

최 여인이 집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오자 호랑이는 그것을 물고 떠났지.

며칠 뒤 이웃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니, 큰 호랑이 한 마리가 함정에 갇혀 울부짖고 있다고 했어. 사람들은 무서워 다가가지 못하고, 그 호랑이가 굶어 죽기만을 기다린다고 했지. 최 여인은 그 말을 듣고 혹시 전에 자신을 구해 준 호랑이가 아닐까 해서 그곳에 가서 호랑이를 살펴보았어.

털빛이 비슷해 보이기는 했지만, 밤중에 본 터라 분명히 구분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호랑이에게 물어보았지.

"네가 며칠 전 밤중에 나를 태우고 온 호랑이니?"

호랑이는 애걸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어. 최 여인은 그제야 이웃 사람들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해 주었지. 그리고 덧붙여 말했어.

"저 호랑이가 사나운 짐승이지만 제게는 참 착한 짐승이었습니다. 저를 보아서라도 호랑이를 놓아 주세요. 제가 가난하여 가진 것은 없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을에 호랑이 가죽 값을 치르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최 여인을 칭찬했어.

"효부가 말하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러나 이 호랑이를 풀어 주었다가 많은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오?"

이때 최 여인이 말했어.

"저에게 함정을 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다른 분들은 모두 멀리 피해 계십시오. 그러면 제가 직접 풀어 주겠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최 여인의 말에 따라 멀리 피했어. 최 여인이 함정을 열어 호랑이를 풀어 주자 호랑이는 최 여인의 옷을 물고 놓지 않다가 한참 지난 뒤에야 떠나갔대.

>> 생각해봅시다

조선 후기에 편찬됐지만, 엮은이를 알 수 없는 ‘청구야담(靑邱野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호랑이는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어가는 과부를 등에 태워 집에 데려다 줍니다. 이후 과부는 자신을 도와준 호랑이가 함정에 빠지자 이웃 사람들을 설득해 호랑이를 풀어줍니다. 사나운 동물이라도 마음을 나누면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