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 영평현이라는 고을에 김씨 성을 가진 심마니가 살았어. 하루는 두 친구와 함께 백운산 깊은 골에 들어갔지.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치 됫박을 엎어 놓은 것처럼 사면을 깎아지른 가파른 암벽이 있었어. 그리고 그곳에는 산삼이 무더기로 아주 잘 자라고 있었어. 세 사람은 몹시 기뻐 어쩔 줄 몰랐지. 그렇지만 거기까지 내려갈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광주리를 엮은 뒤에 칡덩굴을 연결하고 광주리 안에 김씨를 태워 내려 보냈어. 김씨는 실컷 산삼을 캐서 열 묶음도 넘게 광주리에 담았지.

그런데 위에서 광주리를 끌어올리던 두 친구는 산삼을 거의 다 캐고 나자 김씨를 버려둔 채 둘이서만 산삼을 나누어 가지고 떠나가 버렸어. 김씨는 다시 올라갈 수가 없었어. 주변을 둘러봐도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뿐이니, 날개가 없는 이상 벗어날 길이 없었지.

먹을 것도 없어서 그저 남은 산삼을 캐 먹고 지냈어. 그중에는 팔뚝만큼 큰 것도 있었지.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산삼 덕분에 기운이 쌩쌩했어. 밤마다 바위 밑에서 잠을 청하며 온갖 궁리를 다 했지만, 도무지 그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어.

그러던 어느 날 김씨가 암벽 위를 쳐다보고 있는데, 바람이 몰아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나무가 쓰러졌어. 그리고 잠시 뒤 머리가 큰 항아리만 하고 두 눈이 횃불 같은 큰 구렁이 한 마리가 곧장 김씨가 누워 있는 곳으로 기어 오는 거야. 김씨는 이젠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었지.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이야? 구렁이가 김씨 앞을 가로질러 곧장 광주리 줄이 길게 늘어진 절벽으로 가는 거야. 몸길이가 사람 키의 열 배 정도는 되어 보였는데, 제 꼬리를 김씨 앞에 늘어뜨리고는 계속 흔들어 댔어.

'이 구렁이가 나를 보고도 물지 않으니, 구해 주려나 보다.'

김씨는 혼자 이렇게 생각했지. 그리고 허리띠를 풀어 구렁이 꼬리에 단단히 묶었어. 그다음 그 꼬리에 걸터앉아 허리띠 끝을 꽉 붙들고 엎드렸지. 그러자 구렁이가 꼬리를 한 번 휙 흔들었어. 그 덕에 김씨의 몸이 붕 떠올라 절벽 위에 놓였지. 김씨를 절벽 위에 올려놓고 구렁이는 바로 숲속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어. 김씨는 그 구렁이가 신령한 존재라고 생각했지.

김씨는 드디어 올라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게 되었어.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친구 둘이 큰 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 김씨는 멀리서 소리쳤어.

"자네들 아직도 여기 있나?"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아무런 대답이 없는 거야. 앞으로 다가가 보니 두 사람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어. 김씨가 광주리에 담아 올려 준 산삼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지. 어쨌든 급히 산에서 내려와 두 친구의 집에 가서 말했어.

"내가 두 친구와 같이 산삼을 캐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친구들이 토하고 설사를 하더니만 모두 죽었습니다. 아마도 독이 든 것을 잘못 먹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캔 산삼을 고루 나누긴 했지만, 어찌 내 몫을 챙길 수 있겠습니까?"

김씨는 한 뿌리도 남김없이 캔 산삼 전부를 두 집에 나누어 주고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평소 김씨가 믿을 만한 사람이었기에 두 집안 사람들 중 누구도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지. 그리고 그가 준 산삼을 팔아 장례를 잘 치렀대.

그 뒤 김씨는 나이 아흔이 넘어서까지 젊은이처럼 건장했고, 다섯 아들 모두 곡식을 쟁여 놓고 살 정도로 살림이 넉넉했대. 그리고 자손이 번성하여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고, 천한 신분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대.

지난날 있었던 일을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던 그는 백 살 가까이 살다가 죽을 무렵이 되어서야 자손들에게 말했대.

"사람이 나고 죽는 것, 가난하고 부귀한 것은 모두 하늘이 보고 정하는 것이다. 너희는 절대로 악한 마음을 품지 마라. 내 친구들처럼 악한 마음을 품어 하늘의 노여움을 사서는 안 될 것이다."

>> 생각해봅시다

‘청구야담(靑邱野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의리를 저버린 못된 친구들은 벌을 받고, 착하게 살았던 심마니는 구렁이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이 반복되면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점점 약해집니다. 조그만 이익 때문에 자신을 존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공동기획 ㅣ 소년조선일보·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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