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진주에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살았어. 선비는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갔는데 그만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어. 그래서 책을 지고 함께 간 하인과 다시 고향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이었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초재라는 고개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 고개를 넘는 도중에 날이 저물었지 뭐야? 깊은 산 속이라 숲은 나무로 빽빽해서 어두운 데다 길에는 호랑이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었어. 선비는 너무 무서워 사방을 둘러봤지만, 딱히 묵을 만한 곳이 없었어.

한참을 헤매다 보니, 저 멀리 골짜기 사이로 깊은 동굴 하나가 보이는 거야. 등불 같은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걸로 봐서 분명히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았어. 그래서 발걸음을 재촉해서 그곳으로 가 보았지.

가까이 가 보니, 동굴이 집 같기는 했어. 그런데 동굴 주변은 나무와 풀이 무성하고 입구는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친 것처럼 막혀 있었어. 사람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어수선한 상태였지.

동굴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몸집이 아주 작고 기이하게 생긴 노인이 앉아 있었어. 바위에서는 은은한 빛이 나와 머리칼도 볼 수 있을 정도였어. 선비는 속으로 이상하게 여겼지만, 밤이 깊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형편이었어. 하는 수 없이 하룻밤 묵어가게 해 달라고 청했지. 그러자 그 노인이 물었어.

"당신은 뉘시오?"

선비는 사실대로 대답했지.

그러자 노인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내 어찌 길 가는 나그네 하룻밤 재워 주는 것을 마다하겠소? 하지만 나에게 장성한 아들이 셋 있는데, 서쪽 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올 때가 다 되었소. 이 애들 기분을 상하게 할까 걱정스러우니, 몸조심해서 돌아가시는 게 좋겠소."

선비는 왠지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 그곳을 빠져나왔어. 밤은 깊고 하늘은 깜깜해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었어. 하는 수 없이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자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산골짜기에서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가 수풀을 헤치고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선비는 숨을 죽이고 개미처럼 납작 엎드려서 지켜보았어. 그랬더니 수레 굴대만큼이나 굵고 큰 뱀 세 마리가 조금 전 선비가 노인을 만났던 굴속으로 쑥 들어가는 거야. 뱀들은 곧 건장한 남자 세 사람으로 변해 노인 앞에 줄지어 앉았어.

노인이 물었어.

"일은 잘 보고 왔느냐?"

그러자 첫째와 둘째가 대답했어.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셋째의 대답은 달랐어.

"일이 잘되었지요."

"어떤 일이 있었길래 잘되었다고 하느냐?"

노인이 묻자, 셋째가 말했어.

"산길과 마을 길을 누비고 다녔지만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집들이 빽빽이 모여 있는 용궁현이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물가 창포밭 속에 몸을 도사리고 숨어서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지요. 그런데 때마침 그 고을에서 우두머리쯤 되는 관리가 왔습니다. 그는 술에 취해 목이 탔는지 새로 길어 올린 물을 애타게 찾았습니다. 마침 한 여자가 물 항아리를 이고 나왔는데, 제가 그 여자의 발뒤꿈치를 꽉 깨물어서 배부를 때까지 생기를 실컷 빨아 먹었지요."

그런데 그 말은 사람을 물어 생기를 빨아 먹은 것을 자랑하는 것처럼 들렸어.

셋째 아들의 말을 들은 노인은 깜짝 놀랐어.

"너는 참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구나. 이제 우리는 다 죽게 생겼다."

아들이 이유를 묻자, 노인이 말했어.

"고을의 우두머리 관리라면 못 구할 것이 없다. 분명히 약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가 만약 정월 첫 번째 돼지날에 짠 참기름을 구해 그것을 끓여서 물린 상처에 바르고, 또 낫자루 구멍에 참기름을 발라서 울타리에 꽂아 놓기라도 하는 날에는 우리는 다 죽고 말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탄식하며 걱정했어.

노인의 말을 몰래 엿들은 선비는 곧장 용궁현으로 달려갔어. 그리고 뱀에 물린 여자가 있는지를 찾아보았어.

그랬더니 과연 밤에 우물가에서 물을 긷다가 뱀에 물려서 앓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했어. 선비는 그 집 사람들에게 산에서 들은 이야기를 낱낱이 알려 주었어.

마침 관리 집에는 정월 돼지날에 짠 참기름이 병에 조금 남아 있었지. 선비의 말대로 참기름을 뱀에 물린 상처에 바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병이 다 나았어. 그리고 낫에 참기름을 발라서 울타리 중간쯤에 꽂아 두고, 어제 선비가 갔던 그 굴에 가 보았대. 그랬더니 과연 큰 뱀 네 마리가 서로 뒤엉킨 채 죽어 있더래. 동굴 속의 사람들은 천 년 묵은 뱀의 정기가 사람 모습으로 변한 것이었대. 그리고 바위틈에서 나온 빛은 야광 구슬 불빛이었다나 봐.

>> 생각해봅시다

조선 중기 김안로(1481~1537)가 엮은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선비는 사람으로 변한 뱀들의 대화를 엿듣고 뱀에 물린 여자를 살려 줍니다.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남의 생명을 해친 뱀이 탐욕스럽지요? 하지만 아비 뱀은 자식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훈계하고, 미래를 내다볼 줄도 알았으니 동물이라고 다 탐욕스럽기만 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그런데 진짜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고전 앱 '고구마'를 내려받으면 더 재밌는 고전을 만날 수 있어요!

공동기회 | 소년조선일보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