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가상현실(VR)이 만났다. 박물관 전시 유물을 자리에 앉은 채로 생생히 만나고 전 세계 궁전을 거닐어 볼 수도 있다. 공교육으로 들어온 VR은 학교 수업 풍경을 바꿨다. 여학생들은 VR로 게임하듯 공을 차며 축구를 즐긴다. 과학·수학·역사와 연계된 VR은 딱딱하고 지루한 수업에 재미와 활기를 불어넣는다.

◇"인공지능 골키퍼에 맞서라" 흥미진진 VR 축구 수업

"오른쪽 구석으로 세게 차야 해!"

지난 19일 서울 옥수초등학교 'VR 스포츠실'. 학생들의 목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대형 스크린에 떠 있는 장면은 바로 '페널티킥' 상황. 긴장된 분위기 속에 아이들의 시선이 키커의 발끝으로 모였다.

"골~ 골~ 우리가 이겼다!"

VR을 활용한 가상 축구 경기에서 B팀이 마지막 골을 넣으며 A팀을 4대3으로 이겼다.

옥수초에서 지난 7월 개관한 VR 스포츠실이 학생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VR을 활용한 체육 수업. 그중에서도 축구다. "스크린 앞에서 하는 축구지만 진짜 축구보다 더 실감나고 재밌다"는 게 학생들의 반응이다.

VR 스포츠실에 설치된 스크린은 가로 4m, 세로 2.8m 크기다. 학생들이 스크린을 향해 실제로 공을 차면 최첨단 VR 기술이 속도와 방향을 계산해 화면상의 공 이미지로 구현해 낸다. VR 스포츠실 개발사인 에어패스 측은 "천장에 달린 4개의 카메라가 공의 좌표를 인식하고 속도와 스핀을 측정한다"고 설명했다.

스크린을 맞고 떨어진 공은 부스 왼편에 마련된 공간으로 다시 빠져나온다. 공이 무한정 공급되는 셈이다. 김명옥 옥수초 체육부장은 "운동장에서 공을 엉뚱한 곳으로 차면 아이들이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 공을 주우러 가는 것도 민망해 하는데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다. 요즘엔 여학생들도 축구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며 웃었다.

구민준(6학년) 군은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거나 정확하게 날아가지 않으면 인공지능(AI) 골키퍼에게 다 막힌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슈팅을 시도하면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수학·과학은 물론 독도 교육까지 VR 활용 가능

VR 스포츠실에서는 체육 수업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수학, 과학, 역사 등 다양한 교과를 운동과 접목시킨 프로그램도 있다. OX 퀴즈나 객관식 문제, 설명에 따른 그림 맞히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고영규 옥수초 교장은 "플랫폼이 마련됐기 때문에 콘텐츠를 다양화하면 모든 교과를 VR과 연계할 수 있다. 그야말로 융합 교육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옥수초는 독도 교육, 금연 교육, 성 교육에도 VR을 활용하고 있다. 장다정(4학년) 양은 "독도 주변 바다에 사는 해양 생물을 공을 던져 하나씩 맞히는 게임이 특히 재밌었다"면서 "덕분에 독도에 관한 지식이 쑥쑥 늘었다"고 했다.

한상윤 서울시교육청 초등교육과장은 "공교육에서 VR 공간까지 마련해 활용한 건 옥수초가 처음인 것으로 안다"며 "걸음마 단계지만 교육적 효과가 입증되면 추가로 콘텐츠를 만들고 더불어 여러 학교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백㎞ 떨어진 박물관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교실 밖 문화 교육에도 VR 기술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구글은 지난 8월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서울대 어린이병원학교 환자들을 대상으로 '신나는 문화재 탐험'이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구글 익스피디션을 활용해 VR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신라 전시관과 주요 유물을 생생하게 만나는 프로그램이었다. 익스피디션은 2014년 구글이 개발한 교육용 도구로 유명 유적지나 명소의 360도 파노라마 사진, 3D 영상, 주변 소리를 제공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병원에 앉아서 신라의 황금 유물을 만나고 전 세계 곳곳의 아름다운 궁전을 거닐어보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섬마을 어린이들을 위한 간접 견학 프로그램도 인기다. 삼성전자의 전자산업사박물관은 농산어촌 학생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IT 박물관' 교육을 지난달부터 실시하고 있다. 첫 방문지였던 사량초등학교는 경남 통영시 사량도에 위치한 학교다. 학생들은 VR 기기를 활용해 학교에서 353㎞ 떨어진 박물관을 구경했다. 고호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은 "차로 4시간이 넘는 거리를 VR 기술로 눈앞까지 당겨온 셈"이라며 "시공간을 뛰어넘는 VR 기술이 우리 교육의 질과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