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소리 내지 않는다. 조용히 타오를 뿐이다. 하지만 촛불을 손에 들고 모인 시민의 울림은 컸다.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 '제5차 대통령 퇴진요구 집회'에 촛불을 든 시민 150만명이 모였다. 사상 최대 규모다. 집회 참가자들은 눈비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자리를 지켰고 질서를 유지했다. 국내 촛불집회 역사 15년. 촛불은 타올랐고 시민은 성숙했다.

◇15년간 굵직한 사건마다 '촛불' 등장

촛불이 '시위'에 처음 사용된 건 1968년 5월 미국에서다. 베트남 반전 운동가들이 촛불을 들고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펼친 게 그 시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촛불시위가 대중화되지 못했다. '추모'의 자리에서만 종종 등장할 뿐이었다.

국내 촛불집회는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심미선·신효순(당시 중학교 2학년) 양을 추모하는 하는 데서 출발했다. 당시 경기도 양주시에서 길을 가던 두 학생이 주한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추모 성격의 집회였지만, 그해 11월 미군 법정이 사고 운전병들에게 무죄평결을 내리면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로 바뀌었다.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촛불 민심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탄핵안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는 그해 3월부터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린 5월까지 계속 이어졌다.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 반대 집회는 그해 5월2일부터 8월15일까지 100일 넘게 지속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 기간 총 93만명의 시민이 2398회에 걸쳐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이른바 '광우병 촛불집회'로 불리는 이때를 기점으로 특정 집단보다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2011년 반값등록금 공약 논란, 2014년 세월호 희생자 추모 문화제 등 우리 사회의 굵직한 사건마다 항상 촛불이 등장했다.

◇평화적 형태의 '촛불 문화제'로 발전

촛불집회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시위 형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촛불은 '기원' '추모' '평화'의 세 가지를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촛불 하나에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을 빌던 기원의 의미, 망자를 기리는 추모의 의미를 갖는다"면서 "또한 미약한 움직임으로도 꺼질 수 있기 때문에 촛불은 평화를 상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촛불집회가 하나의 '문화제'로 발전해가는 모습이다. 지난 26일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는 가수 안치환·양희은·노브레인 등 대중적 지지를 받는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쳤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현상"이라며 "엄중한 사안에 항의하는 시위 현장에서 무대와 조명을 설치하고 대중문화 공연을 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제 형식의 촛불집회는 애초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법이 바뀐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김선휴 참여연대 상임변호사는 "예전에는 해가 진 이후의 옥외집회를 법으로 금지했지만, 문화 행사는 예외였다"면서 "시위문화도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촛불은 이제 우리 집회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제5차 광화문 집회를 찾은 조상미(37·서울 광진구)씨는 "150만명이 모인 자리에서도 큰 소동 없이 집회를 이어가는 우리 국민의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