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사위인 금양위 박미는 좋은 말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어. 하루는 길에서 어떤 말을 보았는데, 등이 굽어 산처럼 높이 솟아 있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 있었어. 금양위는 더 좋은 중국 말 두 마리를 주면서 바꾸려 했어. 말 주인이 계속 사양하며 거절했지만 막무가내였지.

마부에게 말을 맡기며 잘 먹여 기르도록 했더니 몇달 지나지 않아 덩치가 코끼리만 해졌어. 구슬 같은 눈에서는 광채가 나기 시작했지. 말을 타고 조회하러 갈 때면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금양위의 등 굽은 말을 알아봤어.

광해군 때 금양위가 영광으로 유배를 가면서 이 말이 궁궐로 들어가게 됐어. 광해군은 이 말을 아껴서 항상 후원에서 타곤 했지. 한번은 호위하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혼자서 말을 몰아 달리는데, 말이 광해군을 떨어뜨려 다치게 하고는 후원 문을 빠져나가 달아났어. 어찌나 빠르던지 쫓아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간 곳을 알 수 없었지.

그때 금양위는 유배지에 있었어. 저물녘에 대나무 숲에 앉아 있는데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봤더니만 바로 등 굽은 말이었어. 등에 안장이 놓여 있긴 했지만, 끈이 다 떨어진 상태였지.

공은 깜짝 놀랐어.

'대체 이 말이 어디서부터 왔지?'

그는 땅에 굴을 파고 말을 감춰 두면서 말한테 주의를 주었어.

"천 리 멀리까지 옛 주인을 찾아온 걸로 보아 너는 참으로 영특한 놈이다. 하지만 제멋대로 궁궐에서 달아났으니, 죄를 지은 것임이 틀림없다. 또 멀리까지 와서 나에게 누를 끼쳤으니, 내 죄를 더한 것이다. 그러니 울어서 네가 온 것을 남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먹을 때도 아무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먹어라."

그러자 말은 말귀를 알아들은 듯 귀를 늘어뜨렸어. 그렇게 한 해 이상을 조용히 지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말이 갑자기 머리를 쳐들고 갈기를 흔들며 우는 거야. 그 소리가 산을 뒤흔들 정도였어. 그 후 얼마 있다가 인조반정 소식이 전해졌어.

한참 지난 뒤에 사신이 중국 심양으로 갈 일이 있었어. 사신 일행이 당장 내일이면 압록강을 건널 판인데, 조정에서는 중국에 가지고 가는 문서에 고칠 곳이 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한 거야. 급히 말을 달려야 먼저 간 사신을 따라잡을 수 있었지. 인조는 공에게 이 등 굽은 말을 빌려 달라고 했어. 공은 감히 사양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말을 몰고 가는 사람에게 부탁했어.

"말이 의주에 도착했을 때 절대로 물과 풀을 주어서는 안 되네. 반드시 며칠을 묶어 둔 뒤에 여물을 먹여야 하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이 죽고 말 걸세."

말은 과연 다음 날 날이 저물기 전에 의주에 도착했지. 중국에 가지고 갈 문서를 바꾸었을 때 심부름 간 사람은 기운이 다 빠져 말을 할 수가 없었어. 그런데 그가 치료를 받는 동안 의주 사람이 말에게 바로 먹이를 주었지 뭐야? 먹이를 먹은 말은 결국 죽고 말았대.

>> 생각해봅시다

조선 후기 성해응(1760~1839)의 글을 모아 놓은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말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길러 준 주인을 찾아 주인이 유배된 곳까지 찾아갔습니다. 동물도 의리를 알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끝까지 도리를 다한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지요?

공동기획 ㅣ 소년조선일보·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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