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잇 호잇" 잠수 장비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든 '해녀'들이 물 위로 올라와 내쉬는 가쁜 숨소리다. 물질하기 좋은 날이면 제주 해안가 곳곳에서 이 '숨비소리'가 들린다. 숨비소리엔 척박한 땅에서 태어나 바다에 안길 수밖에 없었던 이곳 여성들의 삶이 묻어 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수세기 동안 이어진 우리나라 고유의 '제주 해녀 문화'가 지난 30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 문화를 직접 마주하기 위해 유네스코 발표를 하루 앞두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 해녀 중에서도 '특전사'라 불리는 마라도 해녀, 김재연(39)·김춘금(61)씨를 만났다.

◇조류 거센 마라도엔 '특전사 해녀'가 산다

지난 29일 오전, 제주는 맑고 화창했다. 하지만 공항에서 차로 50여 분을 달려 도착한 모슬포항 상황은 달랐다.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배 간뎀 마씨(배 가나요)?" 여기저기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결국 첫 배는 결항. 1시간 넘게 기다려 11시 10분 배에 올랐다. 배를 좌우로 흔드는 세찬 파도에 속이 울렁였다.

꽉 막힌 가슴은 마라도에 발이 닿자마자 뻥 뚫렸다. 쪽빛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배 모양 섬. 대한민국 최남단인 이곳에서는 겨울 대신 봄이 느껴졌다.

슬렁슬렁 걸어 다다른 마라로 101번길2. 현무암으로 꾸며진 네모난 건물로 들어가니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찔렀다. 줄지어 걸린 고무옷과 테왁, 망사리(그물망) 등이 눈에 들어왔다. 테왁은 해녀들이 지친 몸을 의지하거나 헤엄쳐 이동할 때 쓰는 부력 도구다.

"마라도 해녀 탈의실이에요. 예전의 불턱 문화가 여기로 고스란히 옮겨왔죠." 김재연씨가 말했다. 불턱은 해녀들이 물 밖에 나와 불 피우는 장소를 일컫는 제주어다. "이곳에서 함께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요. 오늘의 작업 구역과 바람 방향부터 자식 결혼이나 부부싸움 등 집안 대소사까지 전부 다요(웃음)."

현재 마라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녀는 총 6명이다. 김재연씨가 가장 어리며, 대부분 60~70대다. 이곳에서 최고 계급인 대상군은 재연씨의 고모 김춘금씨. 해녀는 잠수 실력에 따라 대상군,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계급은 능력에 따라 자연스레 오르내린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요. 마라도의 경우 상군이 수심 10m 이상 들어갈 수 있어요. 대상군은 쉽게 말해 '대장'이에요. 모든 능력을 갖춘 분이죠. 조류 파악을 가장 잘하고, 상어 등의 위험에서 해녀를 안전하게 지켜줘요."

마라도는 조류가 진도 앞바다만큼 세기로 유명하다. 수심도 깊어 물질 자체가 특전사 활동에 견줄 정도로 힘들다. 게다가 상어도 종종 출몰한다. 춘금씨가 입을 열었다. "하루는 전복을 캐다가 엄청 큰 상어와 눈이 딱 마주쳤어요. 진짜 죽었구나 싶었죠. 정신 바짝 차리고 헤엄쳐 살아 나왔어요(웃음)."

상어를 발견한 해녀는 "야~" 하고 크게 소리쳐 다른 해녀들한테 알린다. 재연씨는 "제주어에 이응(ㅇ)이 많은 이유가 바다에서 가장 멀리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끈끈한 공동체로 살아가는 제주 해녀들

마라도 해녀들은 주로 소라·전복·성게·미역·톳·모자반 등을 채취한다.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춘금씨는 최근 하루에 소라만 100㎏을 따기도 했다. 재연씨는 1㎏가 넘는, 수십년 된 전복을 두 개나 캐는 기쁨을 맛봤다. "수확량이 많을 때 하는 말이 있어요. 서망이런. 못 알아 듣겠죠(웃음)? 운 좋다는 뜻의 제주어예요."

대대로 해녀인 집안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물질을 접했다. 하지만 물질을 직업으로 삼는 건 결코 녹록지 않았다. 매 순간 생사를 넘나들어야 하는 데다, 물멀미 등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함부로 버리고 간 낚싯줄에 몸이 엉킬 때도 있고, 숨을 잘못 내쉬어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위험하지만 한없이 편안한 마음과 풍성한 자원을 선물해주는 게 바다예요. '보물찾기'에 집중하다 보면 온갖 걱정과 시름이 사라져요." 재연씨 말에 춘금씨가 한마디 덧붙였다. "해녀 속담에 '바다가 친정집보다 낫다'는 말이 있답니다."

이들은 해녀 문화가 왜곡되지 않고 옛날 그대로 계승되길 바란다고 했다. "해녀를 제주말로 '좀녀'라고 해요. 좀녀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배려하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어요. 실력이 떨어지는 하군 해녀가 물질하는 바다엔 가지 않는 등 나눔이 몸에 배어 있죠.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에 어린 소라는 놓아줘요. '같이의 가치'가 담긴 해녀 문화가 오래 이어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