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예쁘다기보다는 귀엽고, 활발하고, 또 신나게 잘 노는 아이예요. 말하는 것도 좋아해요. 평소에 너무 쫑알쫑알 거려서 엄마가 힘들대요."

브라운관 밖에서 마주한 아역 배우 허정은(10) 양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커다랗고 초롱초롱한 눈, 동글동글 오똑한 코, 시원한 입매…. 겸손한 말과 달리 인형처럼 예뻤다. 카메라가 실물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만큼 연기 실력도 반짝인다. 최근 종영한 KBS 2TV 드라마 '오 마이 금비'에서 주인공 금비를 맡아 섬세한 내면 연기를 선보였다. '연기 천재'란 호평 속에 2016 KBS 연기대상에서 여자 청소년 연기상도 받았다.

◇연기 배운 적 없는 10살 소녀, 시청자를 울리다

정은이와 만난 지난 12일은 드라마 종방 기자회견이 있던 날이었다. 일정이 마무리된 뒤 오후 6시,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오 마이 금비'를 끝낸 소감이요? 섭섭하긴 한데 이제 고생 안 해도 돼서 조금 좋아요. 일주일 내내 촬영했거든요. 아, 아주 조금이라고 꼭 써주세요(웃음)."

드라마 속 금비는 맑고 순수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똑 부러진 아이다. 아동 치매인 니만피크병에 걸려 기억이 사라져가지만, 좌절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려 애쓴다. 어렵게 진짜 가족이 된 사랑하는 아빠 휘철(오지호), 엄마 강희(박진희)와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어서다.

"아픈 연기가 어려웠어요. 제가 워낙 튼튼해서 잘 안 아프거든요. 니만피크병 환자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챙겨봤어요. 감독님도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자고 일어났을 때 기운이 없으니 그렇게 해보라고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말을 느리게 했는데, 괜찮았나요?"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마지막회에서 금비가 기억을 전부 잃기 전, 엄마 아빠와 셋이 부둥켜안고 대화하는 신을 꼽았다. "안 울려고 했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며 "서로 감싸주고 위로하는 모습이 슬프고도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마지막회 때 제 연기가 여태껏 했던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들어요. 결말이 안타깝긴 했어요. 금비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채 끝나서요."

◇"허정은만이 할 수 있는 연기 보여 드릴게요"

정은이의 데뷔작은 2013년 개봉한 영화 '몽타주'다. 당시 아역으로 활동하던 둘째 언니가 오디션 보는 현장에 따라 갔다가 우연히 캐스팅됐다.

"감독님이 자판기 앞에서 수다 떠는 저를 보시더니 잠깐 들어와 보라고 하셨어요. 대본을 건네주고 읽어보라고 하셨죠. 언니가 집에서 연습하던 걸 많이 봐서 그대로 했어요. 합격 소식을 듣고 엄청 기뻤어요. 저도 언니처럼 TV에 나오고 싶었거든요."

연기학원 한 번 다닌 적 없는 정은이는 이때를 시작으로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해에는 '동네변호사 조들호' '구르미 그린 달빛' '오 마이 금비'(이상 KBS2) 등 3편의 드라마에 연이어 출연하며 물오른 연기 실력을 뽐냈다.

"조들호 때 만난 박신양 아저씨한테 많이 배웠어요. 매번 함께 연습을 하며 이렇게 물어보셨어요.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그 말을 계속 생각하면서 연기를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우는 연기 할 때 그냥 엉엉 소리 내 울었는데요. 지금은 원래 저처럼 울음을 참으면서 눈물을 흘려요."

연기 연습은 주로 엄마와 한다. 정은이가 먼저 대본을 읽어본 뒤, 둘이 대사를 맞춰보는 식이다. "대본 내용을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봐요. 상황을 이해하면 대사 외우기가 쉽거든요. 어떨 때 제 대사는 까먹어도 다른 분 대사는 기억날 때가 있어요(웃음)"

정은이의 꿈은 배우다. "똑똑하고, 연기를 잘하고, 연기 선생님과 감독도 하는 '대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를 통해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어서 좋아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와이어에 매달려서 하는 액션 연기를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허정은이 허정은에게'란 질문을 던졌다. "착하고 귀여운 정은아! 작품도 끝났고, 겨울방학이니 실컷 놀렴. 장염 때문에 못 먹었던 초콜릿 케이크도 먹고 말이야. 앞으로 '허정은만이 소화할 수 있는 연기'란 평가를 받을 때까지 열심히 하자! 자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