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물건을 누구나 쉽게 '만들어' 쓰는 시대가 온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작은 유리컵부터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3차원 설계 도면을 기반으로 물건을 찍어내는 '3D 프린팅(3D Printing)' 기술 덕분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이 기술이 최근 우리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의료, 건축, 항공, 우주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 영역을 넓히며 미래를 이끌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기계·디자인·소재 등 각 분야 전문가들 협업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계산과학연구센터에서 '3D 프린팅 전문가' 조원진(36) 박사를 만났다. 3D 프린팅 전문가는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팀이 꼽은 미래 유망 직업 가운데 하나다. 조 박사는 "3D 프린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D 프린터의 원리부터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3D 프린터는 한마디로 입체적인 물건을 찍어내는 기계입니다. 종이 인쇄물을 뽑는 일반 프린터와 비슷하지만, 평면이 아니라 입체라는 점이 달라요. 우선 제작할 물건의 3차원 설계도를 그립니다. 그런 뒤 플라스틱·금속·나일론 등의 재료를 프린터에 넣어요. 설계도를 프린터에 전송하면 물건이 만들어집니다. 뜨거운 노즐을 통과한 재료들이 미세하게 한 층씩 쌓이며 형태를 이루죠. 설계 도면만 있으면 어떤 물건도 만들 수 있어요."

KIST 계산과학연구센터에는 현재 3D 프린터 전문가가 10명 있다. 이들은 ▲제작할 물건의 3차원 설계 도면을 짜는 '3D 모델링 전문가' ▲3D 프린터 노즐의 크기나 속도·움직임 등 기계적 성능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3D 프린터 하드웨어 기술자' ▲3D 프린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소재 개발을 담당하는 '3D 프린터 재료 기술자'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새로운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다.

◇3D 프린팅으로 뼈·근육·피부까지 재현

"시중에 나온 3D 프린터 기술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대개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걸 어디다 써?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죠.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기계들이 초보 단계의 프린터들이라서 그래요. 우리 사회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연구 결과물은 이미 많이 나왔어요. 비용 탓에 대중화되지 않았을 뿐이죠."

조 박사는 대표적으로 '의료' 분야를 꼽았다.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의 이질감이 드는 의수(義手) 대신 뼈·근육·피부까지 세밀하게 구성된 '3D 프린팅 의수'를 만들 수 있다. 수술 환자의 두개골이나 장기 등 신체 부위를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건축' 분야에서도 활용된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주택이나 빌딩도 지을 수 있다.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에서는 250㎡ 규모 건물을 3D 프린터로 만들었다. 건축비는 1억6000만원. 건축 기간은 단 17일에 불과했다. 3D 프린터 관리 직원 한 명이 해낸 일이었다.

3D 분야에서도 '재료' 쪽을 연구하는 조 박사는 "3D 프린팅을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소재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생활에서 쓰는 대부분 물건이 복합 소재로 이뤄져 있어요. 간단한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가 매일 신고 다니는 신발만 하더라도 천·고무·세라믹 등 다양한 소재가 섞여 있죠. 원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소재도 다양해야 합니다."

최근 3D 프린팅 산업에서는 '친환경 소재'가 인기를 끌고 있다. 플라스틱 대신 목재나 옥수수 가루가 많이 쓰인다. 특히 인체 조직을 대체하는 바이오 장기 개발에 3D 프린팅이 활용되면서 사람 몸에 해롭지 않은 소재가 개발되고 있다.

"3D 프린팅은 1980년대부터 연구되기 시작한 기술이지만 근래 빠른 속도로 진화 중입니다. 앞으로 5~10년만 지나면 지금은 상상도 못 하는 3D 프린팅 관련 직업이 생겨날 거예요. 3D 도면의 저작권을 지키는 직업, 3D 프린터를 활용한 패션 디자이너도 생겨나겠죠? 어린이 여러분도 관심을 갖고 3D 프린팅 분야에 도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