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한국인] 비행사가 되기 위해 남장, 암살 위협까지 견뎌…독립운동가이자 공군의 어머니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기사목록
  • 스크랩하기
  • 블로그담기

입력 : 2017.03.20 09:39

③ 최초의 여성 공군 비행사 권기옥 여사(1901~1988)

	1935년 중국에서 비행사로 활동하던 당시의 권기옥 여사(왼쪽에서 두 번째).
 /조선일보 DB
1935년 중국에서 비행사로 활동하던 당시의 권기옥 여사(왼쪽에서 두 번째). /조선일보 DB
1920년대 일제강점기, 남자들도 되기 어려운 비행사가 돼 하늘을 누린 여자 비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독립운동가이자 우리나라 최초 여행 비행사인 권기옥 여사입니다.

1901년 평양에서 태어난 권 여사는 누구보다 당차고 똑똑한 학생이었어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학교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일제로부터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의지가 대단했어요. 평양 숭의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기숙사에서 몰래 태극기를 만들어 나와 거리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어요. 결국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모진 감옥살이를 해야 했어요.

일본 경찰의 끈질긴 감시로 더 이상 우리나라에 머무는 것이 불가능했던 그는 1920년 중국 상해로 넘어가 조국을 위한 독립운동을 이어나갔어요.

	[위대한 한국인] 비행사가 되기 위해 남장, 암살 위협까지 견뎌…독립운동가이자 공군의 어머니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날아가 조선총독부(일제의 식민통치기구)를 폭파하겠어!" 그는 비행사가 되기 위해 중국 원난에 있는 육군항공학교를 찾아갔어요. 항공학교에는 여학생의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인 남자로 변장을 하고 학교에 다녔어요. 암살 위협까지 받는 상황에서도 그는 비행사가 되는 일에만 몰두했어요. 결국 남학생들도 힘들어 포기하는 지독한 훈련을 견뎌내고 1925년 졸업장을 따내며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이름을 올렸어요.

아쉽게도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겠다는 권기옥 여사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어요. 비행기를 사기 위해 사방팔방 뛰었지만, 돈을 구할 수가 없었거든요. 1945년 권 여사는 미국과 중국에서 비행기를 지원받아 전투에 나서기로 했어요. 하지만 얼마 뒤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고, 우리나라도 해방을 맞았어요.

1949년 한국으로 돌아온 권기옥 여사는 다시 한번 나라를 위해 헌신했어요. 비행사 경력을 인정받아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임명됐고, 한국 공군창설에 온 힘을 기울여 공군의 어머니로 불렸습니다.

전 재산을 장학사업에 기부하고 검소한 생활을 이어 간 그녀는 1988년 88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간의 공을 인정받아 그녀는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에 안장됐고, 지난 2003년 8월의 독립운동가에 이름을 올렸답니다. 권기옥 여사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