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린이] 국내외 하프 대회 휩쓴 허예린 양 <서울 외국인학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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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1 09:32

연주 안 풀릴 땐 티격태격… 하프는 영원한 '단짝 친구'

자신의 몸보다 큰 하프를 어깨에 걸친 소녀가 무대에 앉아 있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줄을 퉁기기 시작했다. 47개의 줄 위에서 춤추는 손가락들이 감미로운 선율이 되어 울려 퍼졌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연주 실력과 표현력에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허예린(서울 외국인학교 6) 양은 '하프 유망주'다. 국내외 주요 대회마다 우승을 놓치지 않는 실력자다. 최근에는 '제7회 고드프로아 국제 하프 콩쿠르' 영 탤런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허예린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 강당. ‘하프 유망주’ 허예린 양이 생애 첫 독주회를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다. /김종연 기자
◇뛰어난 표현력으로 심사위원 사로잡아

'고드프로아 국제 하프 콩쿠르'는 벨기에 출신의 유명 하피스트(하프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펠릭스 고드프로아(1818~1897)를 기리기 위해 3년마다 개최되는 국제 대회다. 올해는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수석 하피스트인 아넬린 레너아츠 등이 심사를 맡았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에서 만난 예린이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무지하게 떨렸다"고 말했다. "'연습한 대로만 하자'고 생각하면서 연주했어요. 다들 잘해서 1등까진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 이름이 불리자마자 너무 신나서 무대까지 한 번에 달려갔어요(웃음)."

우승의 비결은 남다른 표현력에 있었다.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감정을 실어 연주했다. 예린이를 3년째 가르치는 하피스트 박라나(54)씨는 "예린이는 음악성을 타고났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음악에 담아내 큰 감동을 준다"고 평가했다.

대회에서 선보인 곡들은 스스로 선택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 a단조'와 펠릭스 고드프로아의 '요정의 춤' 등이다. 예린이는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야 더 잘할 수 있다"고 했다. "평소 연주회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곡을 발견하면 어려워도 도전해봐요. 자신이 하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허예린
허예린 양은 하루 2~3시간씩 매일 하프 연습에 매진한다. /김종연 기자
하프는 매일 함께하는 내 '단짝 친구'

예린이는 미국에 머물던 여섯살 때 처음 하프를 만났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하프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이 많아 악기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예린이는 '천사의 악기'라 불릴 만큼 고운 소리를 내는 하프에 푹 빠졌다. 별다른 도구 없이 직접 손을 이용해 음을 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연습 시간이 늘어날수록 '영광의 상처'도 따라붙었다.

"처음에는 손가락 끝에 물집이 생겼어요. 키가 작은데 하프 줄을 잡기 위해 계속 몸을 숙이니까 허리도 아팠죠. 다행히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고 키도 쑥쑥 자라서 예전보다 악기 다루기가 편해졌어요."

하피스트는 손뿐 아니라 발의 움직임도 신경 써야 한다.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긴 드레스 안쪽에서 쉴 새 없이 7개의 페달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페달은 '도레미파솔라시'의 반음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페달을 내리면 반음 올라가고, 페달을 올리면 반음이 내려간다. 피아노로 치면 '줄'이 흰색 건반, '페달'은 검은색 건반인 셈이다. 이런 하피스트를 두고 사람들은 수면 아래서 끊임없이 발을 움직이는 백조에 비유하기도 한다.

예린이는 "손발이 계속 바뀌니까 정신이 없다"면서 "한 번 틀리면 되돌리기가 어려워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처럼 비가 와서 기분이 축축 처지거나 연주가 재미없게 느껴지면 욕심부리지 않고 푹 쉬어요. 연습만큼 휴식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회에서 받는 상은 고된 연습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이다. 예린이는 지금까지 서울 필하모닉 전국 음악 콩쿠르 초등부, 서울 바로크합주단 전국 음악 콩쿠르, 대한민국 음악 콩쿠르 등에서 상을 휩쓸었다. 지난해에는 헝가리 세게드 국제 하프 콩쿠르 3위, 일본 소카 국제 하프 콩쿠르 2위에 올랐다.

예린이는 22일 금호아트홀에서 생애 첫 독주회를 갖는다. 7월 세계 하프협회 주최로 열리는 '제13회 월드 하프 콩그레스'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래 유망주'로 선발돼 공연할 예정이다.

"하프는 제 '단짝 친구'예요. 매일 함께하니까요. 연습하기 싫을 땐 사이가 나쁘지만, 연주가 제 맘처럼 잘 풀리면 사이가 좋아져요. 앞으로도 하프와 친한 친구로 지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