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9년, 조선을 세운 태조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이때 임금 자리에 있던 태종(3대 임금, 2대 정종은 왕위를 태종에게 물려주고 물러나 앉아 있었어요)은 신하 하륜을 불렀습니다.

"태조 대왕께서 세상을 떠나셨으니, 선대(先代)의 역사를 편찬할 것이오. 준비하여 후손에 길이 남을 실록을 만들도록 하시오."

그런데 다른 신하들이 이를 반대했어요.

"상감마마! 무릇 역사란 당시대의 사람들이 써서는 아니되옵니다! 자칫 역사가 불공평하게 쓰이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

"무슨 말이오? 태조 대왕께서는 이제 세상을 떠나지 않았소?"

"대왕께서는 승하하셨으나, 그와 가까운 신하들이 아직 살아있으니 실록을 편찬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그러면 여러 신하가 잘 감시하여 공정하게 실록이 쓰일 수 있도록 도우면 되질 않겠소."

결국 태종의 뜻대로 실록의 편찬이 진행되었지요.

임시로 실록청을 만들고,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중 한 사람을 총 책임자로 임명했어요. 또한 글 잘 짓는 벼슬아치를 모아 실제 편찬 작업을 이끌도록 했습니다. 이어 수많은 관리를 뽑아 각각 일을 맡겼어요.

이들은 제일 처음 역사를 기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료를 꼼꼼하게 모으고, 그것을 다시 왕이 재위하던 시기대로 분류했지요. 그렇게 완벽하게 자료가 갖추어지면, 비로소 초조(처음의 원고)를 쓰고, 초조를 바탕으로 충분한 심의(넣을 것은 넣고, 뺄 것은 빼는 작업)를 거쳐 실록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우리는 조선 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요. 그만큼 우리에게는 귀중한 역사책이지요.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부터 철종 대왕까지 25대의 기록이 담겨 있어요. 조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연과 월, 일의 날짜 순서로 기록한 편년체로 쓰였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고종 실록과 순종 실록은 일제 침략기에 일본의 주도로 편찬되었기 때문에 왜곡된 부분이 많고 실록의 편찬 기준에 어긋나는 것도 많아서 실록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에요.

'조선왕조실록'은 똑같은 책이 네 권이 있어요. 왜 네 권씩이나 만들었느냐고요? 우리나라 남쪽으로는 왜가 있었고, 북쪽으로는 오랑캐가 있었어요. 혹시 전쟁이 나서 귀중한 자료가 없어질 것을 우려해서 각각 다른 장소에 실록을 보관했기 때문이에요. 원래 처음에는 궁궐 안에 있는 춘추관과 충주에 있는 사고에 보관하다가 세종 대왕 때 전주와 성주에 사고를 추가로 설치하면서 네 곳으로 나누어 실록을 보관했습니다.

실록에는 조선 시대의 여러 방면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어요. 과학 기술과 문화, 교육 그리고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일식과 월식에 대한 기록까지 담겨 있어서 그 가치가 높아요.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알다시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말고도 우리나라는 7개에 달하는 책(또는 문서)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직지와 고려대장경, 승정원일기, 훈민정음해례본, 조선왕조의궤, 동의보감이에요. 이것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숫자이며, 세계적으로도 6위에 해당하지요.

일본은 기록유산이 하나도 없으며, 중국보다 더 많은 숫자의 기록유산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지요. 이것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당대 이웃의 어떤 나라보다 정신적인 것, 문화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나라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한 더 많은 기록을 가진 중국에 비해서도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된 문화재가 더 많다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이 아주 방대한 기록에도 비교적 공명정대할 뿐만 아니라,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