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왕이 신하들을 모아 놓고 조회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문득 신하들이 왕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상감마마! 조만간 여진의 사신이 방문한다 하옵니다. 빈례(외국의 사신이 방문했을 때 치르는 행사 의식)를 어찌 치러야 할지 명을 내려 주십시오."

"또한 다음 달에 군례(여러 가지 군사훈련을 규정한 의식)를 치러야 하는데 그 일 또한 걱정입니다."

"그런 일들이야 국조오례의에 상세히 나와 있질 않소. 그런데 무얼 걱정하시는 게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란 조선 왕실에서 벌이는 각종의 의식이나 절차를 규정해 놓은 책을 말해요.

특히 다섯 가지, 즉 길례(吉禮)·가례(嘉禮)·빈례(賓禮)·군례(軍禮)·흉례(凶禮) 등 5가지를 기본으로 하였기에 '오례(五禮)'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이 중 길례는 종묘와 사직을 비롯해 산천과 자연, 그리고 사당 등에 지내는 제사 의식을 규정하고 있어요. 가례는 중국에 대한 사대 의식을 포함하여 궁중에서 일어나는 경사스러운 행사에 대한 절차와 의식을 정리한 것, 빈례는 중국을 포함한 일본과 여진족 등 사신을 맞이할 때 행하는 의식을 말하는 거예요. 또한 군례는 여러 가지 군사훈련을 규정한 의식을 말하며, 흉례는 왕실에서 일어나는 각종 장례에 관련된 의식이에요.

그래서 왕실에서 지켜야 할 의식과 절차는 대부분 '국조오례의'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답니다.

그런데 이것이 못 미더운지 신하가 말했습니다.

"하오나 상감마마! 왕실의 행사라는 것이 때마다 사정이 달라서 '국조오례의'만으로는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는 전부 헤아릴 수가 없사옵니다. 더구나 전쟁이 끝난 뒤라 이전과 나라 사정도 많이 다르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신하가 나섰습니다.

"상감마마! 그렇다면 '의궤'를 참고하면 어떨까 하옵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만든 것이 바로 '의궤'이지 않사옵니까?"

"옳은 말이요! 도승지와 여러 신하는 '국조오례의'에 나와있지 않은 왕실 행사의 절차를 '의궤'에서 찾아 잘 살펴보도록 하시오."

'의궤' 역시 왕실에 관련된 행사나 절차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중요한 행사를 치를 때마다 어떤 절차로 행사를 치렀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보고서 같은 것이지요. 특히 '국조오례의'에 담겨 있지 않은 행사나 절차를 담아 놓아 국가 행사 때마다 아주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특히 어떤 행사를 치를 때, 돈은 얼마나 들었으며, 어떤 물품들이 얼마나 사용되었는지, 사람은 얼마나 동원되었는지 같은 세부적인 내용까지 들어 있어서 '국조오례의'보다 훨씬 풍부한 자료적 가치도 있었답니다.

이러한 의궤는 선조 임금 이후, 약 705종에 이르고 있답니다. 이전 것까지 포함하여, 규장각에 553종이 보관되어 있고, 장서각에 293종이 보관돼 있어요. 또한 191종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얼마 전, 임대 형식으로 우리나라로 돌아왔어요.

프랑스가 우리나라 의궤를 소유하게 된 것은 1866년 강화도를 침략하여 외규장각에 보관 중이던 우리나라 문화재를 약탈해 갔기 때문이에요.

또한 일본에도 69종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일본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빼돌린 것이지요

늘푸른아이들 '술술 읽히는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 (초등역사교사모임 글, 이현진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