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막을 내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배 전국 초등학교 야구대회(천안흥타령기)에서 이변(異變)이 벌어졌다. 내로라하는 전통 강호들을 제치고 부산 수영초등학교 야구부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수영초 야구부가 전국대회에서 정상을 밟은 건 1991년 회장기 대회 이후 26년 만이다.

◇운동장 없어 훈련장 전전… 2년 고생 끝에 전국대회 우승

22일 오후 부산 수영초 운동장. 수업을 마친 선수들이 하나둘 유니폼을 입고 모여들었다. 몸을 풀기 위한 러닝을 시작으로 피칭·배팅 연습과 송구 연습까지 부문별로 나눠 훈련이 진행됐다. 평일 훈련은 오후 3시부터 오후 8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1시부터 7시간을 훈련한다. 지칠 법도 한데 찡그리는 사람 하나 없었다. 선수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훈련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솟는다"며 웃었다.

수영초 야구부는 학교가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지난 2년간 운동장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학교 운동장을 다시 밟은 건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그간 선수들은 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인근 학교를 전전하며 훈련을 해야 했다.

"부산에는 야구부가 쓸 만한 운동장이 별로 없거든예. 훈련장 하나를 딱 정하지도 못하고 개성중, 부산공고, 정관야구장을 돌아가면서 빌려 썼다 아입니까. 그 학교 야구부도 훈련해야 되니까예."

김상현(49) 수영초 감독은 훈련 일정을 촘촘하게 짤 수밖에 없었다. 다른 팀이 오기 전에 그날 훈련을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눈칫밥에 기가 죽을 줄 알았던 선수들은 오히려 힘을 냈다. 야구부 주장인 박성준(6학년) 군은 "훈련 시간이 짧아졌기 때문에 감독님과 코치님 말씀을 더 잘 들었다"면서 "가끔 장난치던 후배들도 한정된 시간 안에 집중해서 훈련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2년을 더부살이하며 훈련에 매진한 성과물이 전국 대회 우승 트로피다.

◇'역전의 명수' 수영초… 모든 선수가 에이스

수영초 야구부의 강점은 '밸런스'다. 실력이 두드러지는 스타 플레이어나 야구부마다 한 명쯤은 있을 법한 덩치 큰 선수가 없다. 키도 대부분 160㎝ 내외로 평균 수준이다. 수영초 야구부는 각자의 포지션에서 빛을 발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다.

이번 대회에서 최우수선수(MVP)로 꼽힌 박성준 군은 타격감이 좋다. 5경기에서 11타수 8안타 1홈런을 기록, 0.725타율을 올렸다.

남찬승(6학년) 군은 수영초 에이스 투수. 유소년 야구에는 투타에 모두 능한 선수들이 많지만, 수영초는 투수를 따로 키운다. 찬승 군은 토너먼트로 진행된 이번 대회에서 32강전부터 5경기 모두 선발로 등판, 15이닝을 소화해 우수투수상을 받았다.

호수비가 빛난 이서현(6학년) 군도 우승 주역 중 하나다. 서현 군은 "기본기 훈련을 많이 해야 수비 실수를 줄일 수 있다"면서 "야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니까 실수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수영초 야구부는 전국 대회 징크스가 있었다. 부산·경남 지역 대회인 롯데기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은 있지만, 전국 대회 트로피와는 인연이 없었다. 김상현 감독은 "이번에는 한 판만 이기고 오자고 선수들에게 부담을 덜어줬더니 대번에 우승을 해버리더라"면서 "즐기는 야구의 힘이 세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물론 수월했던 경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5경기 중 3경기가 역전승이었다. 특히 경기 연현초와 맞붙은 결승에서는 6회까지 승부가 나지 않아 연장 8회 끝에 5대4로 승리를 거뒀다. 결승전에서 적시타를 때린 서예담(6학년) 군은 "2아웃 풀카운트 상황이었는데 팔이 떨릴 정도로 긴장했었다"면서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공에 나도 모르게 방망이가 돌아갔다"며 웃었다.

수영초 야구부는 7월 열리는 'KBO 전국 유소년 야구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가끔 실밥이 터진 야구공을 볼 때면 우리가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성과를 내서 학교 선배인 이대호·추신수 선수에게 칭찬받고 싶어요."(박성준·6학년)

어린 선수들이 땀 흘리는 사이 어느덧 조명탑에 불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