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한국인] '천연두 예방' 종두법 보급에 앞장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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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9 09:36

16.지석영 선생(1855~1935)

'종두규칙' 제정, 우두접종 의무화 실시
한글 운동 전개 등 어린이 교육에 온힘

	지석영 선생.
/조선일보 DB
지석영 선생. /조선일보 DB
지석영 선생은 1855년 한의학에 조예가 깊은 지익용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탐구열이 강했던 그는 당시 이름 있던 한의사 박영선에게서 한학과 의학을 배웠어요. 이때부터 서양 학문에 관심을 갖고 중국어로 번역된 서양 의학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요. 특히 영국인 제너가 쓴 종두법에 관심이 많았어요. 종두법이란 소에서 뽑아 낸 면역 물질을 사람 몸에 접종해 천연두를 미리 예방하는 방법을 말한답니다.

1879년 당시 우리나라는 '마마'라고 불리는 천연두가 창궐했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만연했던 여러 가지 전염병 중 감염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았던 천연두 때문에 전국의 수많은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어요.

천연두가 창궐하기 3년 전인 1876년, 지석영 선생은 일본 수신사로 다녀온 스승 박영선으로부터 일본 의사가 쓴 '종두귀감'이라는 책을 받았어요. 그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지석영 선생은 부산 제생의원 원장인 마쓰마에가 종두법을 알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갔어요.

몹시 가난했던 그는 스무날을 꼬박 걸어서 부산 제생병원에 도착했어요. 그 열정에 감동한 원장은 종두법을 가르쳐주기로 했어요. 지석영 선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두 달쯤 지났을 때, 우두 접종법을 완전히 익혔지요. 이후 선생은 제생의원에서 두묘(소의 몸에서 뽑아낸 면역물질)와 종두침, 접종기구, 그리고 서양의학 서적 몇 권을 가지고 서울로 향했어요. 하루빨리 천연두로 죽어 가는 아이들을 살리고 싶었던 그는 올라오는 길에 처가에 들러 장인을 설득해 두 살 된 어린 처남에게 첫 종두를 실시했어요. 그리고 그 마을 어린이 40여 명에게도 접종을 했어요. 바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우두 접종이었죠.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접종하기 위해서는 두묘의 지속적인 공급이 필요했어요. 접종법은 배웠지만 두묘를 제조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던 그는 1880년 수신사 일행의 수행원 자격으로 일본에 가서 우두묘의 제조기술을 배웠어요. 귀국한 뒤 그는 서울에 종두장을 차려 본격적으로 우두접종사업을 펼쳤어요. '종두규칙'을 제정해 전국 모든 어린이에게 의무적으로 우두접종을 실시하도록 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어린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어요.

한편 한글에 관심이 많았던 지석영 선생은 한글 연구와 한글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어요. 주시경 선생과 함께 한글 가로쓰기 운동을 펼쳤고, 교육부 내에 국문 연구소를 설치해 연구원으로 활동했답니다. 옥편의 효시인 '자전석요(字典釋要)'를 간행하는 등 국문 연구에도 공적을 남겼답니다. 이렇듯 그는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해낸 것은 물론, 어린이 교육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