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주명 박사(위 사진). 석주명 박사가 직접 채집해 만들어 놓은 우리나라 희귀종 나비표본. / 조선일보 DB

한평생을 나비 연구에 매진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석주명 박사입니다. 그는 일본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혼란한 근현대사 속에서도 75만여 마리의 나비를 채집하며 한국산 나비를 연구했습니다.

석주명 박사는 1908년 평양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어요. 그는 어린 시절 황소 한 마리보다 비싼 신식 타자기를 어머니로부터 선물로 받을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어요. 그의 아버지는 음식점을 운영하며 쌓은 부를 독립운동에 지원했다고 해요.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석 박사는 자연스럽게 민족문제와 학문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답니다.

그가 나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송도중학교에서 생물 교사로 일할 때였어요. 고등농림학교 지도 교수였던 오카지마 교수가 한반도에 사는 나비를 연구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어요.

이때부터 석주명 박사는 조선의 나비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먼저 그는 일본 동물학자들의 잘못된 나비 분류를 바로잡았습니다. 당시 일본인 동물학자들은 조금만 다른 특징이 있으면 새로운 종이라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한국의 나비가 무려 844종까지 늘어났습니다. 석 박사는 이를 바로 잡고자 배추흰나비 16만여 마리의 무늬를 비교했고, 무늬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종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같은 종류라고 할지라도 성, 계절에 따라 몸의 크기와 무늬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죠. 석주명 박사는 한국의 나비가 총 248종이라고 결론지었어요. 이를 80편이 넘는 논문을 통해 남겼답니다.

석주명 박사는 나비 연구가로도 유명했지만, 우리말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 연구자였습니다. 특히 방언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자랑했답니다. 이 역시 나비 연구에서 비롯됐어요. 각 지역을 다니며 나비를 채집하는 동안 지방마다 녹아 있는 독특한 방언에 흥미를 느꼈거든요. 석 박사는 이후 '제주도 방언집' '조선 나비 이름 유래기' 등 언어 관련 저서들을 여러 편 남겼습니다.

우리말에 대한 애정과 지식은 우리말 나비 이름 짓기로 이어졌어요. 당시에는 일부 나비를 제외하고는 일본식 이름만 있고 우리말로 된 나비가 없었어요. 이에 석주명 박사는 조선 나비 248종에 우리말 이름을 직접 지었습니다.

석 박사는 이 같은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전 세계에 30여명밖에 되지 않는 세계나비학회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어요. 1940년에 낸 저서 '조선산 나비 총목록'의 경우에는 영국 왕립학회 도서관에 소장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서울에 있던 석주명 박사는 조선 인민군으로 오해를 받아 총에 맞고 유명을 달리했어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약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하고 연구한 석주명 박사. 그는 주체적인 민족의식으로 똘똘 뭉친 조선의 위대한 과학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