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 여러분! 소리 친구 구하러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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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1 09:40

어린이가 주인공인 무대… 참여형 공연 현장을 가다

'예술로 상상극장'의 여름방학 프로젝트
아이들이 채우는 무대, 생각하는 힘이 '쑥쑥'… "실컷 놀다 가는 기분"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1층 프로젝트룸에서 '황금빛 언덕의 모험'이라는 제목의 공연이 펼쳐졌다. 검은색 댄스 플로어로 꾸며진 무대에는 턱이 없었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두 명의 배우가 연기를 시작했다. 동글동글 마녀가 소리 친구들을 황금빛 언덕에 가뒀다는 이야기를 풀어낸 뒤, 이렇게 외쳤다.

"모험가 여러분, 소리 친구들 도와주지 않을래요?"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아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대는 순식간에 객석으로 옮겨왔다. 아이들은 보물 주머니를 찾고, 세 가지 미션을 수행하며 극을 이끌었다. '어린이 관객'이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무대… 참여형 공연 현장을 가다
어린이 관객, 무대 위를 누비는 주인공!

'황금빛 언덕의 모험'은 서울문화재단이 여름방학을 맞아 준비한 '2017 예술로 상상극장' 공연 중 하나다. 유·초등생 대상인 이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린 4개 공연은 전부 관객 참여형. 특히 '황금빛 언덕의 모험'과 '시르릉비쭉할라뽕'에서는 관객이 곧 배우가 된다. 우리나라 아동극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예술감독을 맡은 임도완(57) 서울예술대학 교수는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한 공연 형태"라며 "어린이 관객 전부를 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는 처음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사실 아이들이 어른처럼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집중해서 보기란 어려워요. 어둡고 큰 극장을 무섭게 느끼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린이들이 무대와 객석을 넘나들고, 배우와 소통할 수 있도록 작품과 무대를 구성했어요."

이날 공연은 시작도 독특했다. 예정된 시작 시각 15분 전, 배우들이 나와 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길쭉이가 도장 한번 찍어볼까?" 아이들 손등에 파란색 수염 모양 무늬와 모험가라는 글자가 찍혔다. "무슨 의미지?" "우리가 모험가인 거야?" 공연장이 시끌벅적해졌다.

조명이 살짝 어두워지자 두 배우는 무대로 향했다. 집게, 젓가락, 유리컵, 고무장갑, 프라이팬, 주걱, 석쇠, 물병, 만두 찜기…. 부엌에서 만나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도구로 신나게 연주했다. "드륵드륵 촥촥 땡땡 따그락따그락 띡."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곁들였다. 어린이들이 배꼽 잡고 웃었다. "으헤헤, 하하하!"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자 아이들은 배우들과 탐험에 나섰다. 각자 찾은 보물 주머니를 목에 걸고, 황금빛 언덕을 지키는 세 명의 문지기와 대결했다. 어깨를 잡고 두 줄 기차를 만들어 무대와 객석을 누비며 다른 미션도 차례로 통과했다.

어둠의 숲을 지나 마침내 소리 친구들을 구한 어린이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야 호!" 한 아이는 탄식하듯 내뱉었다. "벌써 끝났어?"


	‘황금빛 언덕의 모험’ 공연을 보러 온 어린이 관람객들이 배우가 돼 극에 참여하고 있다.
‘황금빛 언덕의 모험’ 공연을 보러 온 어린이 관람객들이 배우가 돼 극에 참여하고 있다. / 이경민 객원기자
자기 주도성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참여형 공연

이날 공연을 보러 온 이강민(서울 사당초 4) 군은 "이번 방학에 했던 체험 중 최고"라고 엄지를 들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캠핑이나 수영만큼 재밌더라고요. 모험가가 돼 보니 정말 짜릿했어요."

최예진(서울 은천초 2) 양은 "주인공이 되어보니 동글동글 마녀처럼 친구들한테 내 욕심만 부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면서 "연극, 그리고 배우라는 직업에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다. 서채령(서울 구암초 1) 양은 일기장에 쓸 내용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공연을 본 게 아니라 놀이터에서 놀다 가는 기분이에요."

이 같은 참여형 공연은 어린이들에게 '자기 주도성'을 심어준다. 스스로 극을 완성해나갈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배우 이혜진(36) 씨는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아동극보다 관객들의 몰입도가 훨씬 높더라"면서 "아이들이 에너지를 건강하게 발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했다.

김수현(41)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매니저는 "'생각하고 상상하는 힘'도 길러준다"고 힘주어 말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어머니는 괴테가 어릴 적, 책을 클라이맥스 부분 전까지만 읽어줬대요. 괴테는 스스로 다음 스토리를 만들며 창의성을 키웠죠. 참여가 그만큼 중요하단 얘기인데요. 연극에 참여한 아이들 역시 언제 어디서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거예요."

'2017 예술로 상상극장'은 오는 20일까지 계속된다. 신청은 홈페이지(www.sfac.or.kr)에서 가능하며, 관람료는 3000원이다. 임도완 예술감독은 "'어린이가 있는 곳은 어디나 극장이 된다'는 말을 목표 삼아 2학기 때 서울 시내 초등학교 등에서 참여형 공연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무용을 접목해 신체 발달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형태의 아동극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