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이 발길질을 얼마나 세게 했는지 덩치 큰 역봉과 골리샘은 한꺼번에 데굴데굴 굴러 벽에 몸뚱이가 쾅 부딪히고 나서야 일어났다.

"누구야? 감히?"

역봉이 헐크처럼 소리질렀다. 공항 로비를 오가던 사람 중 하나가 역봉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테러범처럼 생겼다!"

이 한마디에 공항 로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서로 먼저 도망치려고 혼비백산이었다. 역봉은 눈에 눈물을 글썽였다. 핑이 역봉의 등짝을 퍽 때리자 역봉의 눈에 꾹꾹 고여 있던 눈물샘이 폭발했다.

"으아아앙!"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레이더스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거야. 테러범이라니…. 내가 위로해줄게."

골리샘이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다들 그만해요. 지금 우리 도망가야 한다고요. 뒤를 봐요. 대형 모니터를 보라고요."

수리가 짜증을 내며 모니터를 가리켰다.

공항 벽면의 대형 모니터에는 역봉의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공항 내부 CCTV로 관찰된 역봉의 실시간 상황이었다.

"어디로 도망간다는 거야? 우리는 조금 전에 여기 도착했다고. 베이징 공항으로 다시 온 이유도 아직 모르는데 또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야 한다고? 이건 미친 거야. 미쳤다고."

사비가 신경질을 내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중국 경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일단 뛰어!"

수리가 먼저 달렸다. 사비, 마루, 골리샘, 역봉, 핑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수리가 달리는 방향으로 같이 뛰었다. 경찰들이 계속 호루라기를 불며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수리는 무작정 뛰긴 했지만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어딜 가나 많은 사람이 우글거렸고 경찰들은 계속 따라붙고 있었다.

"여기 왜 온 걸까? 골든릴리 말해줘. 왜 우릴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수리는 지그재그 종횡무진 아무 데나 뛰어다니면서 중얼거렸다.

"골든릴리, 골든릴리, 빨리 길을 알려달라고. 제발."

수리는 공항 로비를 크게 원을 그리듯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출입구마다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수리를 스치듯 지나가는 한 소년이 있었다.

"앗."

수리는 진짜 기절할 뻔했다. 누런 이빨의 덧니소년이었다. 베이징 공항에서 핑의 오피스텔로 안내했었고 퀴번사제와 연금술사들과 함께 있던 바로 그 소년이었다. 덧니소년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헤헤 웃었다. 그리고 종이에 쓴 메모를 쓰윽 보여주더니 사라져버렸다.

"8번 비상구?"

수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비와 마루, 골리샘, 핑과 역봉이 수리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고 그 뒤를 경찰들이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수리는 덧니소년이 알려준 8번 비상구를 찾기 시작했다. 공항 로비는 엄청 넓었고 8번 비상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이제 공항을 오가던 사람들조차 수리의 일행을 막으려고 하고 있었다.

"힘을 내자. 검을 차고 있던 사무라이들도 물리친 적이 있잖아?"

수리는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8번 비상구를 찾고 있었다.

"찾았다."

수리는 8이라고 쓰인 에스컬레이터를 보았다.

"어? 비상구가 아닌데? 에스컬레이터가 8번?"

수리는 멈칫 사방을 둘러보았다. 가까운 곳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사람들을 밀쳐내며 엘리베이터로 달렸다. 8번이었다. 하지만 비상구라고 할 수 있을까? 수리는 다시 달렸다. 비상구가 있었다. 그런데 8번이 아니었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청소차 아저씨에게 물었다.

"비상구 8번이 어디예요?"

청소차 아저씨는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누런 덧니를 가진 아저씨였다.

"핑형!"

수리가 핑을 불렀다.

"이상해요. 비상구 8번이 없어요."

수리는 다급했다.

"비상구? 8번? 비상구는 보통 계단이잖아? 비상구? 계단? 8번?"

수리는 입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빨리 찾아야 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핑 기사님, 지하 보일러실에 작은 누수가 있으니 8번 창구로 오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놀란 건 핑이었다.

"이건 또 무슨 공포 영화냐?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찾다니? 핑 기사님? 지하 보일러실? 8번 창구?"

역봉이 핑의 등을 떠밀었다.

"지금 이런 거 저런 거 따지게 생겼어? 뒤를 보라고."

경찰들이 떼로 모여들고 있었다.

"나를 따르라!"

핑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찰 중 한 명도 동료 경찰들에게 소리쳤다.

"나를 따르라!"

다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핑은 8번 창구로 가서 승무원을 향해 말했다.

"제가 핑 기사입니다."

승무원이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킥킥 웃었다.

"아, 핑 기사님이요?"

승무원은 그렇게 웃더니, 패스포트를 건네주었다.

핑은 당황했다. 비행기를 탈 것도 아닌데 패스포트라니? 게다가 핑 혼자가 아니고 일행이 있는데 패스포트 한 장이라니? 승무원은 눈짓을 주었다. 승무원의 눈짓을 따라가 보니 누런 덧니를 가진 청소차 아저씨가 핑을 향해 웃고 있었다.

핑은 청소차 아저씨 쪽으로 뛰었다. 수리도 사비도 마루도 뛰었다. 역봉도 골리샘도 뛰었다. 청소차 아저씨가 청소차를 슬쩍 비켜주었다. 맨홀 뚜껑 같은 것이 나타났다. 뚜껑에 8이라고 적혀 있었다. 핑이 뚜껑을 치우고 아래로 내려갔다. 수리와 사비, 마루, 골리샘, 역봉도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