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인터뷰] 국내 첫 '젓가락 연구소' 변광섭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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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14 09:38

"막대기 두 짝엔 한국인 식문화·손기술의 비밀 숨어있죠"

한국 젓가락은?
무겁고 뜨거운 음식 집기 위해 내구성 뛰어난 '쇠수저' 만들어


	[THE 인터뷰]
변광섭 책임연구원이 길이가 1m에 달하는 젓가락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그는 “천당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긴 젓가락으로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며 웃었다. / 청주=한준호 기자
최근 충북 청주에 '수상한 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두 개의 막대기'를 연구한다. 삼국시대 우리 조상이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 시대로 온다면, 알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물건이다. 바로 '젓가락'이다.

'젓가락을 도대체 왜 연구하는 걸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지난 5일, 국내 유일의 '젓가락 연구소'를 찾았다. 변광섭(51) 책임연구원과 연구소 곳곳을 둘러보며 젓가락에 숨겨진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 과학을 만났다.

나라별 문화 반영한 각양각색 젓가락

	[THE 인터뷰]
1 옻칠로 꾸민 젓가락. 2 젓가락 연구소 전경. 3 버려진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업사이클(Up-Cycle·더 의미 있고 멋진 재활용) 조형물.
이날 오전 청주문화산업단지 건물 2층. 중앙 로비에서 변 연구원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잠시 멈춘 곳에는 알록달록한 색깔로 칠해진 동그란 조형물이 있었다.

"사람들이 쓰고 버린 나무젓가락을 모아 미술 작가들이 도넛 모양을 만들었어요. 근사하지 않나요(웃음)? 이런 업사이클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예요."

다음으로 젓가락 공방에 들렀다. 시민들이 나무젓가락에 조각칼로 아름다운 무늬를 새긴 뒤, 옻칠에 한창이었다. 이를 바라보던 변 연구원이 입을 뗐다.

"고려가요 '동동'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12월 분디나무로 깎은 젓가락, 내 님 앞에 놓았는데 남이 가져다 뭅니다. 아으 동동다리." 분디나무는 우리나라 야산에서 자생하는 산초나무를 가리켜요. 나무젓가락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됐다는 얘기죠. 우리 조상은 예로부터 젓가락을 신체의 일부처럼 소중히 여겼어요. 그래서 손가락, 발가락과 마찬가지로 '가락'이라는 단어를 붙인 거예요. 네모난 윗부분은 땅을, 둥근 아랫부분은 하늘을 상징해요."

드디어 젓가락 연구소에 입성했다. 앞면 전체가 통유리로 돼 있어 안이 훤히 내다보였다. 전시 공간과 연구 공간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특히 1000여 년 전, 고려 때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 수저 유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반도에서는 철기시대 이후 청동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조선시대에는 구리와 주석을 섞은 유기로 수저를 제작했는데요. 유기는 독성이 있는 음식과 닿으면 검게 변하는 특성이 있어요. 입 냄새를 잡아주기도 하고요. 그러나 가격이 비싸서 왕이나 양반들이 주로 사용했어요. 서민들은 나무 수저를 썼고요."

이후 쇠 수저가 등장해 오늘날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음식 문화와 연관이 있다. 파전이나 김치찌개 등 다른 나라에 비해서 무겁거나 뜨거운 채로 먹어야 하는 음식이 많은데, 쇠 수저는 튼튼해 오래 쓸 수 있어서다. "같은 젓가락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서는 나무젓가락이 인기예요. 나무가 쇠보다 훨씬 가볍고, 튀김 등 기름진 음식을 집을 때 덜 미끄러우니까요."

젓가락 길이는 중국이 가장 길다. 크고 둥근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각자 접시에 음식을 덜어 먹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음식을 집기 편하도록 만들어진 거죠. 일본은 독상 문화라 젓가락이 짧고, 우리나라 젓가락은 이 두 나라 젓가락의 중간 길이예요. 재밌는 사실 하나 더. 젓가락 끝부분은 일본이 가장 뾰족해요. 생선류 요리가 많아 뼈를 잘 발라먹기 위해서예요."

'문화 DNA' 젓가락, 우리네 음식 문화와 손 기술을 담다

젓가락 연구소는 올해 8월 청주시가 설립했다. 청주시는 2015년 동아시아 문화도시 선정을 계기로 '젓가락'이라는 콘텐츠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제안으로 개최한 '젓가락 페스티벌'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변광섭 연구원은 "전 세계인의 3분의 1이 젓가락을 쓴다"며 "그중에서도 한국의 쇠젓가락에는 '뇌과학'이 녹아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뇌에서 손이 차지하는 영역이 가장 커요. 많은 양의 신경세포가 할당돼 있다는 얘기인데요. 손에는 인체의 뼈 중 4분의 1이 넘는 뼈가 있어 섬세한 근육과 관절 조절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젓가락을 사용하면 손가락에 있는 30여 개 관절과 60여 개 근육이 움직여요. 두뇌 활동이 활발해지는 셈이에요."

이 때문에 뇌 손상을 입은 환자의 재활 훈련 때 젓가락을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반도체와 의학, 양궁과 사격 등 섬세한 손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것도 젓가락 사용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는 "침팬지가 포크나 나이프는 써도, 젓가락질은 못한다"며 "젓가락을 두드리며 장단 맞추는 '흥 문화'도 우리의 자랑"이라며 웃었다.

젓가락 연구소는 앞으로 젓가락 콘텐츠의 세계화에 앞장설 계획이다. 우선 한·중·일 젓가락 문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다. '미래형 젓가락'의 청사진도 그린다. "젓가락 끝부분에 전자칩을 다는 거예요. 음식의 염분과 당도 등을 조사해 먹는 사람에게 즉각 알려줄 수 있도록요. 이를 빅데이터화 해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도 활용하고요. '한국의 문화 DNA' 젓가락의 미래, 기대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