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으로 만나는 문화] 며칠 전엔 어리다더니… 이제는 다 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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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14 09:38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준수와 동생 민수가 장난감을 놓고 다투자 엄마가 준수를 나무랐어요.

"준수야, 네가 형이잖아. 동생한테 양보해 줘야지."

엄마가 나무라자 준수는 입을 쑥 내밀고 불평했어요.

"하지만 저도 아직 어린아이잖아요. 동생한테 무조건 양보하기는 싫어요."

준수의 말에 엄마는 결국 같은 장난감을 민수에게 하나 더 사주었어요.


	속담으로 만나는 문화

며칠 뒤, 준수는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가겠다고 엄마를 졸랐어요.

"안 돼. 아직은 어려서 너희끼리만 놀러 가는 건 위험해. 다음에 엄마랑 가자."

엄마가 반대하자 또 준수는 입을 내밀며 투덜거렸어요.

"너무 어린아이처럼 대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다 컸다고요."

준수의 말에 엄마가 고개를 저었어요.

"며칠 전에는 아직 어린아이라더니 이제는 다 컸다고? 완전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구나!"

엄마의 말에 준수도 민망해져서 더는 조르지 못했어요.


쏙쏙 우리 속담_ 귀걸이를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처럼 보는 입장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또는 그렇게 원칙 없이 자기 마음대로 이유를 갖다 붙이거나 둘러대는 모습을 가리킬 때도 쓰여요.


조선시대 남자들도 귀걸이를 했다고?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옛날에는 귀걸이를 ‘이식’이라고 불렀어요. 이식은 선사시대부터 장신구로 사용됐고, 삼국시대에는 매우 유행했어요. 또 조선시대 초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도 이식을 즐겨 착용했어요.

그런데 조선 제14대 왕 선조(1552~1608)가 다스릴 무렵부터 귀를 뚫는 것은 오랑캐의 풍습이라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어요. 점차 귀걸이를 하는 남자들이 사라졌지요. 조선 후기에는 높은 계급의 여인들이 의식이나 혼례 때에만 걸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