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구미류의 앞번데기.

강원도 함백산에 가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 만항재 산책길을 걷습니다. 길옆에 서 있는 자그마한 물푸레나무가 바람을 끌어안고 서 있습니다. 잎들이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윤이 나는군요. 잎에는 노란 보석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온몸을 노랗게 물들인 들메나무외발톱바구미 애벌레였습니다.

아기 들메나무외발톱바구미는 어찌 보면 노란 유약을 듬뿍 바른 도자기 같고, 어찌 보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노란 보석 황수정 같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녀석이 움직입니다. 스멀스멀 기어 물푸레나무 잎 가장자리로 갑니다. 잠시 멈칫거리더니 노란 몸뚱이에서 깨알만 한 까만 머리를 쏘옥 꺼냅니다. 그리고 주둥이를 잎에 대고 오물오물 먹기 시작합니다. 주둥이가 작아 연한 잎살만 먹을 줄 알았는데 생긴 것과 영 딴판으로 잎살과 잎맥을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쑥덕쑥덕 베어 잘도 씹어 먹습니다. 먹으면서 똥도 아무 데나 싸 물푸레 잎이 지저분합니다.

하도 귀여워 슬그머니 쓰다듬었더니 손끝이 분비물에 달라붙고, 손을 얼른 떼니 점액질이 딸려 나옵니다. 손끝을 비비니 끈적이고, 손을 코에 대니 냄새가 안 납니다. 도대체 색깔도 없고 냄새도 안 나는 분비물의 정체는 뭘까요?

▲ 들메나무외발톱바구미의 번데기 방(고치).

녀석에게 미안하지만 분비물을 손끝으로 훑어 냈습니다. 밥 먹다 날벼락을 맞은 들메나무외발톱바구미는 놀라 몸뚱이를 움츠리고 죽은 듯 꼼짝하지 않습니다. 분비물 옷을 빼앗긴 녀석은 어떻게 할까요? 다시 분비물 옷을 만듭니다. 녀석은 곧바로 항문 안쪽에 있는 분비샘에서 분비물을 만들어 배 끝으로 내보냅니다.

분비물 옷을 뚝딱 만들어 입은 녀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물푸레나무 잎에 앉아 다시 식사를 합니다. 바람이 불고 햇살까지 내리쬐는데 혹시 분비물이 마르면 어쩌나 걱정이 돼 한참을 지켜봅니다. 다행히 분비물은 마르지 않고 물기가 흥건히 배어 있습니다.

분비물은 들메나무외발톱바구미의 연약한 몸을 지켜 주는 수호천사 역할을 합니다. 들메나무외발톱바구미는 행동이 빠릿빠릿하지 않고 굼떠 포식자가 나타나도 도망치지 못하지만, 분비물 옷에 푹 싸여 있어 포식자가 똥인 줄 착각하고 지나치기도 합니다. 또 분비물은 쨍쨍 내리쬐는 태양의 직사광선을 막아 연약한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도 하고, 분비물이 매끄러워 잎 위나 줄기 위를 잘 기어다니도록 윤활유 역할도 합니다. 포식자를 만나면 자신을 방어할 무기가 하나도 없는 녀석들, 믿는 게 분비물이라니! 어째 맘이 짠합니다.

상상의숲 '곤충의 빨간 옷'